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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허(太虛) 홍선(泓宣)의 생애와 사상:-한국불교사적 지위와 한국불학사적 위상- (Life and Philosophy of Taeheo Hongseon: -Position in Korean Buddhist History and Status in Korean Buddhist Science-)

4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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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5 최종저작일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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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허(太虛) 홍선(泓宣)의 생애와 사상:-한국불교사적 지위와 한국불학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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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사상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사상사학 / 39호 / 303 ~ 346페이지
    · 저자명 : 고영섭

    초록

    이 논문은 대한시대 이래 독립운동과 불교의 혁신 및 대중화에 헌신한 태허 홍선(太虛 弘宣, 1905~1979)에 대해 논구한 글이다. 홍선은 조선불교 선교양종 교정으로 있던 선암사 경운(擎雲, 元奇, 1852~1936)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그를 찾아가 머리를 깎고 출가(1930)하였다. 태허는 여래의 지견[佛之知見]을 중생에게 열어[開] 보이고[示] 깨달아[悟] 들게[入] 하고자 붓다가 이 사바세계에 온 것을 깊이 믿고, 이 일대사 인연을 중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고자 종단을 창종하였다. 종단 이름도 이 여덟 글자의 처음인 ‘불’(佛)과 마지막인 ‘입’(入)을 딴 ‘불입’(佛入)종이었다. 이 종명에는 그의 강렬한 법화신앙의 의지가 배어있다.
    태허가 남긴 산문과 저술 및 역서 등도 모두 법화 도리로 귀결되었다. 그것은 ‘법화삼매 대비주’로 표출되었으며 그의 출가로부터 창종 그리고 입적에 이를 때까지 법화행자의 삶으로 한결같이 이어졌다. 이것은 그가 잇고자 했던 해동천태법화종의 출현 의지와 맥이 닿아 있다. 태허는 불입종을 사회적 시대적 요청과 호국의 사도로서 자임하고 있으며, 일불승법화문(一佛乘法華門)을 개창하여 파사현정의 행원으로서 참 불교의 생활신조를 선포하고 있다. 사법을 깨뜨리고 정법을 드러내려는 그의 의지는 불입종의 지향을 통해 강력하게 표출되었다. 불교 개혁에 대한 태허의 남다른 의지는 불입종(관음종)의 종풍이자 불자들의 가풍이 되었다. 따라서 태허의 불교 혁신에 대한 의지는 법화삼매의 대비주를 통한 내적 확신과 기성 종단의 비판적 성찰 위에서 확립된 것이었다.
    그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종래 한국불교가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뼈아픈 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라와 통일신라 및 고려와 달리 조선조 이래 산중불교의 흐름이 대한시대 이래 계속되어 왔다. 타종교가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통해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노력하고 있을 때 한국불교는 친일청산론에 근거한 과도한 정화불사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태허는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태허가 기성 종단을 떠나 새로운 종단을 창종한 것도 바로 종교의 사회적 직무에 대한 그의 이러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허의 생활불교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종래 불교의 특징인 승려 중심의 종단이 아니라 승속이 혼연일체가 되는 종도 대중의 종단을 지향하겠다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서 명실공히 ‘사부대중의 종단’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성 종단과는 차별되는 불입종 특유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향은 종래 종단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진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불타의 지견을 새롭게 본받는 종단을 지향하며, 일상생활을 종교적으로 실천 수행하는 불교로 나아가려 했다. 뿐만 아니라 자아 완성을 추구하는 불교와 복될 일을 하자는 불교, 유기적인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는 불교, 자율적인 종교로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각성하고 스스로 증득하는 불교 신앙을 전개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그가 구현하려고 했던 생활불교의 주축들이었다. 따라서 태허 홍선은 역사와 현실이 융합된 한국불교사에서 정통 선사의 길을 걸었으면서도 승속이 혼연일체가 되는 독자적인 종단을 창종한 ‘선구적 종교인’이었으며, 경학과 수행이 통섭된 한국불학사에서 법화사상과 법화삼매를 아우르는 대비주로서 법화수행의 체계를 세운 ‘독자적 수행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겨레불교를 지향하여 민족의 불교가 되게 했으며, 생활불교를 추구하여 불교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영어초록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iscuss Taeheo Hongseon(1905~1979) who devoted himself to national liberation movement, buddhist revolution and popularization after Daehan Empire. Since Heungseon was impressed by Great Priest Gyeongun of Seonamsa (1852~1936) and understood Buddhism deeply, he has become a Buddhist monk(1930). Taeheo believed that Buddha came to the earthly world in order to open the view of Tathagata to people, enable them to understand it and enable them to enter the world. Therefore, he created the religious order to enable people to understand the historical relationship. The name of religious order was 'Bulip' School, which was named from the first word of 8 characters 'Bul' and the last word 'Ip'. The name of religious order has his strong intention of lotus belief.
    All of proses, books and translated books of Taeheo were concluded to the lotus theory. It was expressed as ‘dharani of great pity in the samadhi of the dharma-flower’. His buddhahood, religious order creation and nirvana were led to the life of lotus priest. It is also led to Tien-Tai Dharma Flower Order in Haedong that he tried to connect. Taeheo took responsibility for Bulip School according to social, historical request and as a disciple for country protection. He opened one-Buddha vehicle school in Dharma Flower and declared life principle of real Buddhism as a priest of break wickedness and expose lotus. His intention to break wickedness and expose lotus was strongly expressed through Bulip(佛入) Order. His distinguished intention for Buddhist revolution was the trend of Bulip Order (Gwaneum Order) and family tradition of Buddhists. Therefore, his intention about Buddhist revolution was established on the ground of internal confirmation and critical consideration of existing religious order through lotus absorption dharani of great pity.
    He thought social function of religion deeply. His recognition was originated from painful repent of existing Korean Buddhism's insufficient part. Unlike Shilla, Unified Shilla and Goryeo, the flow of mountain Buddhism has been continued since Joseon Dynasty. When other religion made an effort for its social role through active social participation, Korean Buddhism lost too many things through Buddhist effort of purification concentrating on pro-Japanese clearance excessively. Taeheo recognized this point deeply. It is assumed that the reason that Taeheo left existing religious order and created new one was originated from the consideration on social duty of religion. In his Buddhist world, the distinguished part is that he aimed at the religious order of the public where clergy and laity were unified rather than priest becomes the center of religious order that was the characteristic of existing Buddhism. It was the unique trend of Bulip School that was discriminated from that of existing school. Namely, his intention was to become the religious order of the public both namely and virtually.
    The aim was advanced recognition that could not be imagined in existing religious order. He also aimed at the religious order that emulated the view of Buddha and oriented the Buddhism that practices daily life in religious way. Moreover, he pursued the Buddhist religion to recognize, wake up and accomplish voluntarily through liberal religion such as the Buddhism for self-completion, the Buddhism for good fortune and the Buddhism for organic new life movement. they were cornerstones of daily life Buddhism that he tried to embody. Therefore, Taeheo Heungseon was a 'leading religious person' who went to the road of traditional priest in Korean Buddhist history and created unique religious order where clergy and laity were unified. In Korean Buddhist history, he was a 'unique trainee' who established the system of lotus training as a dharani of great pity covering thought of the dharma-flower. and the samadhi of the dharma-flower.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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