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케네디 행정부의 대한 정책(1961-1963): 간섭인가 협력인가? (Kennedy Administration’s Korea Policy, 1961-1963: Intervention or Cooperation?)

25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5.14 최종저작일 2007.05
25P 미리보기
케네디 행정부의 대한 정책(1961-1963): 간섭인가 협력인가?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미국사학회
    · 수록지 정보 : 미국사연구 / 25권 / 133 ~ 157페이지
    · 저자명 : 장준갑

    초록

    본고는 남한에서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하여 정권이 바뀐 시점부터 1963년 10월 선거에 의해 민간정부가 수립된 시기까지 약 2년 6개월 동안에 케네디 행정부가 정치·군사·경제적인 측면에서 쿠데타 세력을 상대로 취했던 행동을 남한의 국내 정치 전개와 관련하여 분석해 봄으로써 케네디 행정부의 정책이 쿠데타 세력의 정책 결정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는지, 그 영향력의 정도가 협력과 조언의 범위를 넘어서서 개입과 간섭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해보고자 한다.
    1961년 남한에서 발생한 5·16 쿠데타는 케네디 행정부의 새로운 제3세계 정책인 근대화 전략의 추구를 용이하게 하였다. 유약하고 점차 국민적 지지를 잃어가고 있었던 장면 정부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던 미국에게 반공으로 무장하고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는 군사정부의 등장은 미국에게 남한에서 자신의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케네디 행정부는 남한에서 자신들의 근대화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하여 박정희 쿠데타 세력에게 대의정부의 형태를 띤 민간정부로의 환원, 김종필 등 반미적이고 과격한 인사들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배제 등 국내문제에 간여하였다.
    군정의 조속한 민정복구 요구는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하여 1961년 11월 박정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미국은 ‘2년 후’에 하겠다는 박정희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더 강한 압력을 가하여 민정복구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미국에게도 큰 실익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박정희의 약속 그 자체에 만족하였던 것이다. 김종필의 권력으로부터의 제거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좀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였다. 그 이유는 김종필과 그 일파가 권력을 독점할 경우 초래될 결과를 미국은 염려했던 것이다. 군정의 민정환원의 지체 내지는 무산은 물론 쿠데타 세력의 분열과 약화로 인한 정국의 불안과 혼란이 야기되어 결국 미국의 남한에서의 정책 수행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통화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점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표하면서 경제원조 제공의 일시 보류를 고려할 만큼 강력히 대처하여 군사 정부로부터 향후에는 모든 국내의 주요 현안에 대하여 성실히 협의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정화법의 실시와 같은 현안에 대해서는 앞의 경우와는 달리 강한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미국의 남한 국내 정치·경제 현안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정도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안별로 그 강도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기준은 미국의 정책 수행의 장애여부에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정책 수행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좀 더 강한 압력의 수단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가 막연히 이해하고 있듯이 피압박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압력이라기보다 많은 경우에 상호 협력적 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기 남한에서 군사정권을 상대로 한 케네디 행정부의 대한 정책의 수행은 개입과 간섭이 주요 작동 기제였을 것이라는 심리적 측면의 판단보다는 미국의 원조 제공으로 인하여 형성된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감안한다면 협조와 조언이라는 증거적 측면이 더 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영어초록

    The paper examines how the administration of John F. Kennedy (1961-1963) formed policies with regard to South Korea before and after the military coup of 1961 in the context of the dominant American third world strategy, modernization theory, in the Kennedy team’s preferred guise of “nation-building.” This approach emphasized economic supports more than military activities and thus depended upon financial relations to keep third world nations under American influence. Policy makers in the State Department and White House agreed on applying the nation-building strategy to Korea, which they viewed as under strong American influence but still under possible threats of communist infiltrations, economically and politically. However, anti-American emotions and strong nationalistic feelings within Korea confronted the Kennedy administration with the possibility of failed nation-building there.
    A military coup on May 16, 1961 made the Korean problem seem more manageable. Administration officials saw the coup d’état as an opportunity to establish a pro-American Korean government that would willingly follow American counsel on unification, corruption, and communist infiltrations. Within a month of the coup, the Kennedy administration decided to go with the new group represented by Major General Park Chung Hee, who desperately needed American supports to succeed. The Kennedy Administration had three basic goals in dealing with the coup leaders: to maximize the humane priorities of the regime and set a clear distinction between officers engaged in political and administrative responsibilities and those engaged in military responsibilities; to make it absolutely clear that future U.S. assistance above a minimum maintenance level would be conditioned upon Korean performance, in accordance with the American administration’s new aid concepts; and to take anti-corruption actions through reform of the civil service, police, tax collection system, and government budgeting procedures.
    In pushing their policy goals in South Korea, Americans decided to use their economic and military assistance as levers to lead the aggressively nationalistic South Korean coup group in the desired directions. They intervened, if it seemed necessary, in Korean politics to achieve their goals. But in many cases they refrained from interference in South Korea if the issues had little connection with the basic policy goals. The Kennedy administration's Korea policy should be examined in terms of mutual relations because the two nations needed each other.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미국사연구”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방대한 자료 중에서 선별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목차부터 본문내용까지 자동 생성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캐시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08월 01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36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