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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巖의 奉恩寺 住錫 과정과 봉은사에서의 활동 양상 (A study on Hanam(漢巖)’s presiding process of Bongeunsa and his activities in Bongeu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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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3 최종저작일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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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巖의 奉恩寺 住錫 과정과 봉은사에서의 활동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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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수록지 정보 : 동아시아불교문화 / 45호 / 209 ~ 237페이지
    · 저자명 : 염중섭

    초록

    한암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총 4차례나 敎正과 宗正으로 추대되며, 한국불교를 주도한 고승이다. 한암은 주로 五臺山 上院寺의 26년간의 수행과 교화를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한암의 명성이 서울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는 봉은사 板殿 禪院 祖室이 되는 과정과, 봉은사에서의 활동에 대해 검토해 본다. 한암의 봉은사 주석은 1923년부터 1926년 3월까지의 3년 정도이다. 이 기간에 박한영·최남선 등의 명사들과의 교류가 발생한다. 또 ‘을축년(1925) 대홍수’라는 국가적인 재앙을 맞아서는, 봉은사 주지인 羅晴湖에게 지시하여 708명의 인명을 구제한다. 그리고 홍수의 뒷수습 기간인 1925년 음력 7월 15일에는 受戒를 통해, 민심과 승려들의 안정을 도모했다. 이로 인해 한암은 ‘活佛’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기에 이른다.
    한암은 조실로서 참선 수행자를 지도하는 동시에 사리에도 뛰어났고, 이는 이후 한암이 4차례나 교정과 종정으로 추대되는 동인이 된다. 또 한암은 대홍수의 수습이 마무리된 후에는 李鍾郁의 ‘五臺山을 안정시켜 달라’는 간청을 수락한다. 이로 인해 1926년 3월 중·하순에 오대산으로 옮겨간다.

    영어초록

    Hanam was a high priest who led Korean Buddhism, being selected as Gyojeong(敎正, Buddhist Head) or Gyojeong(宗正, Denomination Head) four times before and aft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anam has usually been known with his practice and edification for 26 years at Sangwonsa(上院寺) Temple in Mt. Odae(五臺山).
    However, this paper focuses on the process of his becoming the Panjeon Seonwon Josil(板殿 禪院 祖室) of Bongeunsa Temple and his activities in the temple, where Hanam came to get reputation in Seoul. Hanam's presidency in Bongeunsa continued about three years from 1923 to March 1926. During this period, he had an acquaintance with celebrities such as Park Han-young and Choi Nam-seon. In addition, at the break of national disaster called the “Great Flood of Eulchuk-year(1925),” he instructed Nacheongho(羅晴湖), the governor of Bongeunsa, to relieve 708 people. Furthermore, on July 15, 1925(Lunar calendar), during the recovery from the flood, Hanam promoted to settle the public sentiment and the monks through Sugye(受戒). For this reason, Hanam has earned the highest praise as ‘Hwalbul(活佛, living Buddha)’.
    While teaching the Zen practitioners as the Josil, Hanam was so excelled in the worldly management that he became Gyojeong or Gyojeong four times later. In addition, after the completion of the flood control, Hanam accepted Lee Jongwuk(李鍾郁)'s petition to “stabilize the Odaesan”. For this reason, he moved to Mt. Odae in the middle/late March of 1926.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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