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 AI글쓰기 2.1 업데이트
PARTNER
검증된 파트너 제휴사 자료

666년~668년 전쟁에서 淵男生의 鄕導 역할에 대한 考察 (A Study on the Guiding Role of Yeun Namsaeng(淵男生) in the War from 666 to 668)

49 페이지
기타파일
최초등록일 2025.03.28 최종저작일 2023.07
49P 미리보기
666년~668년 전쟁에서 淵男生의 鄕導 역할에 대한 考察
  • 미리보기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호서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역사와 담론 / 107호 / 47 ~ 95페이지
    · 저자명 : 정원주

    초록

    연개소문의 후계자였던 淵男生은 동생들과의 권력다툼에서 위기에 몰리자 고구려에서의 당의 우위를 인정하고 당의 질서에 포함된 藩國의 소임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군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에서는 남생의 요청으로 고구려의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게 되자 대총관 契苾何力 등의 구원군을 파견하였다. 남생은 당으로부터 고구려에서의 그의 지위였던 ‘太大兄’을 인정받았으며, 그를 위협하는 아우 연남건의 무리를 토벌할 수 있는 자격인 ‘平壤道行軍大總管 兼 安撫大使’의 지위를 제수받았다. 그러나 고구려군 15만이 遼水에서 진입을 막자 당군은 회군하였다. 당은 고구려가 번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그해 12월에 전면전을 위한 군대를 꾸리면서 고구려와 당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차로 파견된 李勣 군은 2월에 신성을 공격하기 시작해 9월에 함락했다. 그 사이 글필하력과 방동선 등은 소자하 유역의 木底城, 南蘇城, 倉巖城을 차례로 함락하고 國內城에 주둔하고 있던 남생군과 합류했다. 남생은 이 세 성의 함락에 공을 세웠고 국내성을 비롯한 6성을 들고 당에 입조하였다. 이때, 남생은 귀순을 결정했던 것으로 보이며 당 고종으로부터 ‘玄菟郡公’에 제수되었다. 남생의 당 투항으로 당은 고구려 침공의 안전한 루트와 전초기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고구려 국내 사정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전쟁을 보다 쉽게 풀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남생은 668년 다시 전쟁이 벌어지는 고구려로 투입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당의 의도만큼 고구려에서의 성과가 드러나지 않고 장기화할 우려 때문이었다. 남생의 투입과 증원된 군사들로 인해 당군은 압록강 방어를 뚫고 평양성으로 진군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진 정보와 인맥을 바탕으로 당은 평양성에 대한 효율적인 공격과 유력 인사에 대한 회유로 마침내 성을 함락할 수 있게 되었다. 고구려 멸망 후 당 고종은 그의 ‘鄕導’의 공을 인정해 ‘卞國公’을 제수하고 높은 지위와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였다.

    영어초록

    Yeun Nam-saeng(淵男生), the successor of Yeon Gaesomun, was in crisis in a power struggle with his younger brothers. It seems that he asked for the Tang Dynasty to send troops, acknowledging that it was Goguryeo's superior country and promising to fulfill the duties of the subordinate state included in its dominance. In the Tang Dynasty, Namsaeng's request secured a justification to intervene in Goguryeo's internal affairs, so it dispatched a Tang army led by the Grand Commander Qifu-Heli(契苾何力). Namsaeng was approved by the Tang for his original position in Goguryeo, Tae-dae-hyung(太大兄), and was appointed as the Pyongyang-tao Commander-in- chief(平壤道 行軍大總管), a qualification to subdue the forces of his younger brother Nam-gun who threatened him. However, when 150,000 Goguryeo soldiers blocked their entry from the Liao River, the Tang army returned. In December of that year, the Tang organized an army for an all-out war against Goguryeo, and the war between Goguryeo and Tang began.
    The second dispatched army led by Li Ji(李勣) started attacking the castle in February and captured it only in September. In the meantime, Qifu-Heli and others captured Mokjeoseong Fortress(木底城), Namsoseong Fortress(南蘇城), and Changamseong Fortress(倉巖城) in the Soja River(蘇子河) basin, and joined Nam-saeng's forces at Gugnaeseong Fortress(國內城). Namsaeng contributed to the capture of these three provinces and entered the Tang Dynasty with 6 castles including Gugnaeseong Fortress. At this time, Namsaeng seems to have decided to surrender, and received the title of the Commandery Duke of the Xuanyu(玄菟郡公). With Namsaeng's surrender, the Tang Dynasty was able to secure a safe route and outpost for the invasion of Goguryeo, and it was possible to wage war more easily based on information about Goguryeo's domestic situation.
    In 668, Namsaeng was sent to Goguryeo where war was going on. This decision was made because the results of the war with Goguryeo were not revealed as much as the Tang Dynasty intended, and there was a concern that the war would be prolonged. Due to Namsaeng's participation in the war and the reinforcements, the Tang army was able to break through the defenses at the Yalu River and advance to the Pyongyang Fortress(平壤城). Based on his information and personal connections, the Tang army was finally able to capture the Pyongyang Fortress through effective attacks and conciliation of influential persons. After the fall of Goguryeo, Emperor Gojong awarded him with ‘the title of the Duke of Byeon-guk(卞國公)’ for his “guid(鄕導)” achievements in the war and allowed him to live a comfortable life with a high status.

    참고자료

    · 없음
  • 자주묻는질문의 답변을 확인해 주세요

    해피캠퍼스 FAQ 더보기

    꼭 알아주세요

    •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역사와 담론”의 다른 논문도 확인해 보세요!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5년 09월 03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12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