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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정전협정과 한국동란의 법적 성격과 효력
1.1. 정전 협정의 의미와 성격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3년 1개월의 한국동란은 전 전선에 걸쳐 정지되었다. 정전이란 교전국 군대간의 합의에 의한 부분적 일시적인 전투행위의 중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한반도 정전협정에서 쓰인 정전은 좀 더 현대적 의미의 정전, 즉 휴전에 해당하는 것이다. 휴전에는 일반적 휴전과 부분적 또는 국지적 휴전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일반적 휴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전협정은 결과적으로 일반적 휴전협정인 동시에 유엔체제하의 정전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1.2. 일반적 휴전협정과 전쟁종결의 법리
교전당사자들이 휴전협정을 체결하여 적대행위를 중지한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경우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고도 정상관계를 회복한 사례가 2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현재의 정전협정만으로도 사실상 전쟁이 종료하였으므로 별도의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고도 평화상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일반적 휴전협정이 잘 이행·실천될 경우 별도의 평화협정 체결이 없이도 사실상 전쟁이 종결되는 동시에 실제적인 의미에서 평화상태의 회복(또는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Stone 등의 견해가 현재 「현행의 법」으로 확립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학자들의 입법론은 현행의 법과 구분되어야 한다. 둘째, 남북한관계에 있어서는 Stone 등이 제시하는 요건이 모두 충족되고 있는지 여부가 의문으로 남는다. 북한의 각종 도발행위를 고려할 때 북한이 전쟁 또는 무력도발을 포기했다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정전협정이 이미 사문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정전협정 때문이 아니라 한·미 동맹관계 내지 양국간의 연합방위전력에 의한 전쟁억제력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Stone 은 실제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일정한 요건 하에 정전협정만으로도 「사실상 전쟁이 종결」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휴전이 「법률상의 전쟁 종결」을 주장하고 있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요컨대 일반적인 휴전협정(체제)이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되고 성실하게 이행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전쟁이 종결될 수 있다는 견해는 아직까지 경청할 만한 입법론에 지나지 않으며, 현행의 법으로 확립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그러한 소론에 의하더라도 현 정전상태가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 남북한이 쌍무적인 합의에 의해 전쟁의사를 명백하게 포기하였고 그것을 보장하는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이행·실천만으로는 한반도 정전상태의 종결, 나아가 평화상태의 회복 내지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법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
1.3. 한반도 정전협정의 문제점
한반도 정전협정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전협정이 일반적 휴전협정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및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전협정은 교전국 군대 간의 합의에 의한 부분적 일시적 전투행위의 중지를 의미하는 일반적 휴전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전협정만으로도 사실상 전쟁이 종료되었으므로 별도의 평화협정 체결 없이도 평화상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행위와 정전협정 위반으로 인해 한반도 상황이 아직 전쟁종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둘째, 정전협정의 당사자 문제에 관한 혼란이다. 북한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따른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조치로 발발한 것이므로,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유엔군과 북한이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 간의 평화협정 체결은 현행 정전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셋째,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과 실제 평화파괴 행위 간의 모순이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계속해서 비무장지대 침범, 국가 테러, 도발 등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정전체제의 파괴를 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정전협정의 이행 및 관리 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전협정은 사문화되어 있는 실정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의 억지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한반도의 정전상태는 법리적으로 전쟁 종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전협정 체제의 문제점으로 인해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 지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체결주장
2.1.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체결주장의 내용
북한은 60년대 초부터 평화 체제 구축문제를 제기해왔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의 4단계 변천과정을 보여왔다. 첫째, 남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 둘째,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장, 셋째, 북남 불가침 공동선언 및 북미 평화협정 동시체결 주장, 넷째, 포괄적인 대미 평화보장체계 수립 주장이다.
북한의 주장은 "아직 한반도에서 조.미간의 전쟁이 종식되지 않고 있고 비정상적인 정전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공고한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현재의 정전협정이 북한과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체결주장은 첫째, 한국전쟁 당사자에 대한 북한의 인식, 둘째, 정전협정 당사자에 대한 북한의 입장, 셋째, 평화협정 체결의 당위성 및 필요성에 대한 북한의 시각 등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의 사문화 및 정전기구의 기능상실에 대해 그것이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면서, 핵문제 등 한반도관련 사안도 북한과 미국을 적대관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오늘 조선반도에서 핵문제를 비롯한 일련의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전협정의 실제적 당사자들인 우리(북한)와 미국을 적대 쌍방으로 규정하고 있는 정전체계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2.2. 대미평화협정 체결주장의 위법·부당성
2.2.1. 대미평화협정 체결 논리의 허구성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체결 주장의 논리는 허구적이다. 첫째, 한국전쟁은 북한과 미국간의 전쟁이 아니라 북한이 6.25 무력남침을 감행하자 유엔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에 따라 참전한 유엔군에 의한 집단행동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주장하듯이 전쟁당사자가 북한과 미국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오늘날 전쟁은 국제법상 불법화되어 있으며 유엔헌장은 더 이상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침략행위"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남침행위는 평화의 파괴로 규정되어 유엔의 집단적 강제조치의 대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 간의 전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셋째, 전쟁은 본래 국가 간에 행해지는 것이지 국가와 국제기구 사이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유엔군과 전쟁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성립될 수 없는 논리이다. 이와 같이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한국전쟁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으며 국제법 및 유엔헌장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2.2. 한국정전협정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인가?
북한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논거로 북한은 정전협정의 일방 서명자인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미국군인(4성장군)이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른바 실질적 당사자론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북한은 이 실질적 당사자론에 입각하여 미국이 정전협정 당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법리적으로 볼 때 타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법리적 관점에서 보면, 유엔군사령관은 유엔의 보조기관인 유엔군사령부의 장으로서 일차적으로 그에게 부여된 권한에 입각하여 정전협정을 교섭·서명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는 서명자에 불과할 뿐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유엔군사령부나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북한이 유엔군사령관의 국적이 미국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미국이 정전협정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전협정 서명자의 국적과 그가 행한 법률행위의 귀속 당사자를 혼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주장은 법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의 직접 당사자는 대한민국과 북한이며, 정전협정의 당사자 역시 대한민국과 북한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대미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법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
2.2.3. 평화협정 체결주장과 평화파괴행위의 모순
북한은 입으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정전협정체제를 무실화하는 방법으로 평화를 파괴하고 교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이다.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전제조건인 정전협정의 성실한 이행과 남북한 간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을 무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질적인 평화는 협정문상의 규정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 간에도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정전협정 위반을 묵인한 채 체결되는 평화협정은 제2의 정전협정이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려면 그에 앞서 정전협정의 성실한 이행, 특히 군사정전기구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순리적인 방법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 수차례의 대통령 암살기도, 군사분계선 지역의 총격 무력시위, 잠수함 및 잠수정 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