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선사 문화와 고대 국가의 형성
1.1.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부터 시작되어 인류가 뗀석기를 사용하며 생활했던 시기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주먹도끼, 찍개 등의 다양한 뗀석기와 뼈나 뿔로 만든 도구를 사용했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며 열매 채집, 짐승 사냥 등을 통해 생활했으며,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임시로 막집을 지어 살았다. 충청남도 공주의 석장리, 충북 단양의 금굴 등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신석기 시대에는 돌괭이, 돌보습, 돌낫, 갈돌과 갈판 등의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 원시 무늬없는 토기 등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정착하여 움집을 짓고 살면서 씨족 또는 부족 공동체를 이루었다. 제주도 고산리, 서울 강동 암사동,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영도 동삼동 등에서 신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구석기 시대에는 열매 채집과 짐승 사냥을 주로 하며 이동 생활을 했고,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여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2. 고대 국가의 성립과 발전
1.2.1. 고조선의 건국과 성장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랴오닝 지역과 한반도 서북부를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고조선의 건국은 단군 건국 이야기로 전해지는데, 단군은 하늘의 자손을 자처하며 제정일치 사회를 이끌었다.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 세력을 확장하여 연나라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후 기원전 3세기에 접어들면서 왕호를 사용하고 왕위 세습이 이루어졌으며, 상, 대부 등의 관직이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로 발전하였다.
고조선은 위만에 의해 전복되어 한무제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고조선은 약 1년간 한과 대립하다 기원전 108년에 멸망하였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하여 철기 문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평가받는다.
1.2.2. 고구려, 백제, 신라의 등장과 발전
고구려, 백제, 신라의 등장과 발전이다.
고구려는 3세기 중반 만주 지역의 졸본에서 건국되어 5세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주몽이 왕위에 오르며 고구려가 건국되었으며, 이후 5부 연맹체를 거쳐 점차 중앙 집권화되었다. 고국천왕은 5부를 행정 구역으로 개편하는 진대법을 실시하였고, 소수림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태학을 설립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광개토대왕의 북진 정책으로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고, 장수왕 때는 남쪽으로 한강 유역까지 진출하여 국력이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후 수·당과의 전쟁에서 국력이 쇠퇴하며 고구려가 멸망하게 된다.
백제는 온조가 위례성(서울)에서 건국하였다. 4세기 전성기에 접어든 백제는 고이왕 때 관등제와 관복제를 정비하고, 근초고왕 때는 마한을 정복하고 중국과 일본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5세기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한강 유역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후 잇따른 패전으로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였다. 6세기 성왕은 사비(부여)로 천도하며 남부여로 국호를 바꾸었지만, 결국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신라는 김씨 왕조가 건국한 후 4~6세기에 걸쳐 발전하였다. 내물왕은 '마립간'이라는 새로운 왕호를 사용하며 왕실 권력을 강화하였고, 진흥왕은 화랑도를 개편하고 한강 유역을 비롯한 광범위한 영토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진흥왕의 순수비 건립은 신라의 대외적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7세기에는 나·당 동맹을 바탕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1.2.3. 가야 연맹의 성립과 변천
가야 연맹은 3세기경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형성된 연맹체 국가로, 한반도 남동부 지역에서 발전하였다. 금관가야는 벼농사와 철기 문화가 발달하였고, 활발한 중계 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다.
초기 가야 연맹은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금관가야는 3세기 경 김해 일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철기문화와 벼농사가 발달하였다. 또한 중계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리며 가야 연맹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4세기 후반 신라 법흥왕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받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후기 가야 연맹은 5세기 후반 대가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대가야는 고령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신라 진흥왕 때 멸망하기 전까지 가야 연맹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대가야 역시 신라의 공격으로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
이처럼 가야 연맹은 3~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동부 지역에서 번영을 누리며 발전하였으나, 신라의 공격으로 인해 결국 멸망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한반도의 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서 가야 연맹이 약체화되고 흡수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3. 삼국의 통일과 통일신라
고구려와 수ㆍ당의 전쟁
고구려는 수 왕조와 당 왕조의 침략을 격퇴하며 자신의 영토를 수호하였다. 수 대제가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을지문덕 장군의 지휘 아래 살수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고구려군이 수군을 격퇴하였다(살수대첩). 당 태종도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연개소문 장군의 지휘 아래 안시성 전투에서 당군을 격파하여 철수시켰다. 이처럼 고구려는 중국의 대군을 거듭 물리치며 자신의 독립을 지켜냈다.
신라의 삼국 통일
수ㆍ당의 침략에 맞서 고구려와 백제가 약화되자,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신라는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을 차단하기 위해 나ㆍ당 전쟁을 펼쳤다. 신라군은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당군을 격파하였고, 마침내 676년 삼국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통일신라의 발전과 변천
문무왕 때 마무리된 삼국 통일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왕국을 열었다. 통일신라는 왕권을 더욱 강화하며 중앙 집권체제를 확립해 나갔다. 신문왕은 국학을 설립하고 24관등제를 도입하여 유교 이념의 중심 정치 체제를 마련하였다. 또한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는 등 유교 국가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신라 후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화되고 진골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호족세력이 성장하면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선종과 풍수지리설 등이 유행하며 지방 세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가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내 정치적 동요 속에서 마침내 후삼국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4. 발해의 건국과 발전
발해는 고구려 장군 출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건국하여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였다.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표방하며 후진국이었던 고구려에 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국가였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하여 688년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표방하였으며, 중앙 행정 기구나 지방 행정 체제 등에서 고구려의 제도를 계승하였다. 또한 당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이를 자국의 상황에 맞게 발전시켰다.""
발해는 역대 왕들의 노력으로 지속적인 영토 확장을 이루었다. 무왕은 당의 산둥반도 공격을 감행하여 동북아시아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였고, 문왕은 당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중앙 관제를 정비하였다. 선왕은 말갈을 복속시키고 요동과 연해주 지역으로 진출하여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번영을 구가하였다.""
발해의 통치 체제는 당의 제도를 수용하되 독자적인 운영을 하였다. 중앙에는 3성 6부제를, 지방에는 5경 15부 62주 체제를 구축하였다. 또한 주자(중앙 교육기관)와 주작대로(상징적인 도로)를 설치하는 등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이처럼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인이 주축이 되어 건국된 국가로, 당의 선진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고구려의 계승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2. 고려의 통치 체제와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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