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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이번 과제를 접하면서 미암 유희춘이라는 역사속의 인물을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반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난 미암이라는 인물이 조선시대의 보수적인 양반으로서의 미암이 아닌 좀더 인간적이고 친근한 미암으로 느껴졌다. 책을 읽는 동안 미암이라는 인물에 빠져들어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읽으니 미암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했다. 원체 책에 잘 빠지는 나이기에 미암의 늙음을 느끼면서 가슴아파하고 한편으로는 양반으로서의 고집을 미워했다. 사실 지금의 가치관으로 그 시대의 양반의 가치관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대부분 넘어갔지만 공정하고 인정을 베풀 줄 아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을 깔보며 무시하고 자기생각에 대한 고집등 전형적인 늙은이의 아집과 독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전형적인 문제가 있듯이 그것 또한 그런 뜻의 말이다. 그렇지만 일을 행할 때의 생각이나 판단기준 등을 확고히 하여 공명정대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미암의 일기를 통해 내가 느끼고 깨달은 점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내가 느끼고, 이 시대에는 이랬구나하는 그런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2. 미암 유희춘의 일생
미암 유희춘은 중소지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영특한 머리로 26세에 과거에 급제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35세에 양재역 벽서사건에 휘말려 20여 년간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귀양살이 중에 많은 책을 읽으며 높은 학식으로 정평이 났고, 선조로 임금이 바뀌자 사면되어 정5품의 홍문관 교리에 제수된다. 이후 죽기 직전까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지냈다"".
3. 미암의 권세
3.1. 집 지을 때의 권력 부리기
미암은 2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공직생활을 시작하였지만, 35세에 발생한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20년간의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귀양에서 풀려나자마자 서울로 급하게 상경하였는데, 그 이유는 자신을 수족처럼 돌볼 수많은 노비들을 데리고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책에 의하면 미암이 고향 해남에서 새로운 집을 짓는 과정에서 그의 권력이 잘 드러난다고 한다. 당시 미암은 47칸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집을 지었는데, 이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 공사였다. 그러나 주변의 여러 지방관들이 발 벗고 나서서 미암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다양한 식물들을 보내어 미암의 집 짓기 공사를 지원하였다.
이는 당시 양반 지주층의 착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암은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주변의 군사와 백성을 동원하여 동원하였고, 이는 당시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행이었다. 즉, 미암과 같은 양반 지주층은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을 마음껏 동원하고 착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암의 일기를 통해 16세기 조선의 양반 지주층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지역민들을 동원하고 착취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양반 사회의 특징 중 하나였으며, 상위 계층의 횡포와 특권의식이 잘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2. 호장 송원룡과의 갈등
호장 송원룡과의 갈등은 미암의 권세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미암은 날이 추워지자 고을 아전의 우두머리인 호장 송원룡에게 숯을 청구하였으나 그가 이를 거절하자 괘씸함을 느낀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이에 미암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