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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시선, 새로운 서사의 탄생 - 김애란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1.1. 서론: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희극의 대가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보통 우리는 이걸 '가까운 비극'과 '먼 희극'의 대비 정도로 생각한다. 어쩜 그렇게 좋은 일은 내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인지.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비극은 가까이에, 희극은 멀리에 있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반대의 경우가 있다. 김애란의 소설이 그렇다.
김애란은 모두가 비극이라고 생각할 법한 삶을 그들만의 희극으로 그려내고, 우리를 그 희극 안으로 안내한다. 즉, 우리가 멀리서 봐도 비극이고 가까이서 봐도 비극일 것 같은 삶을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렇지 않게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인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유려하게 펼쳐낸다.
1.2. 본론
1.2.1. 김애란의 세상을 보는 시각과 표현법
김애란은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민감한 감각과 세심한 시선을 가진 작가이다. 텍스트를 읽다 보면 시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묘사가 자주 눈에 띈다. 가령 미라의 임신 소식을 듣고 분노한 외할아버지의 얼굴에 "여름의 무성함을 숨기고 있는 겨울의 엄정함이 서려 있었다"고 말한다거나, 트램펄린을 타고 퉁- 퉁- 튀어오르는 아름이의 모습을 묘사하는 등 작가의 섬세한 관찰이 돋보인다.
서하에게 보내는 메일을 적으면서 들키기 위해 숨어 있는 "틀린 그림"처럼 보이는 표현은, 부정이 아닌 시치미가, 긍정이 아닌 너스레가, 들꽃처럼 곳곳에 심겨 있길 바라는 것이 그렇다. 이렇듯 김애란의 시선은 평범한 삶에서도 독특한 의미와 분위기를 포착해낸다.
이러한 작가의 예리한 인식과 묘사는 인물의 변화를 주변 풍경의 변화와 연결지어 표현하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임신이라는 선택지를 마주한 열일곱, 어린 부부의 설레면서도 복잡한 심경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짙은 한숨을 토해내는 서서 잠든 나무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머리채를 흔들며 산이 꾸는 꿈을 곁눈질하는 마당 앞 작물들"과 같은 장면이 그려질 것 같다. 이는 열일곱, 경제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완전한 성숙을 이루지 못한 나이에 또 다른 미성숙한 존재를 품고 길러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시각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하고 특이한 시선을 통해 인물들의 삶을 비극을 뒤집어 희극으로 보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혹여 비극이 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