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1.1. 노사관계의 중요성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노사관계 속에서 산다고 할 수 있다. 근로자와 사용자로서 직접 노사관계의 당사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노사관계에 있는 이들이 생산한 제품 등을 소비하면서 그 영향을 받기도 한다.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한 기업의 노사관계는 기업내 문제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노사관계가 바르게 서지 아니하면 우리네의 삶 또한 제대로 설수 없다.
노사관계는 노·사·정이 삼위일체가 되어 서로 보완하며 조화를 이룰 때 각기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일지라도 근로자의 창의와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조만간 도태될 것이다. 아무리 능력과 창의력을 갖춘 근로자라 할 지라도 이를 발휘할 수 있는 기업경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능력은 사장되고 말 것이다. 또한 아무리 의욕과 사명감을 가진 정부라 할 지라도 노사간의 분쟁과 갈등이 계속된다면 폐망의 길로 접어들고 말 것이다. 즉 올바른 노사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기업의 존속도 근로자의 생계도, 나라의 발전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1.2. 논의 범위 및 구성
이 문서에서는 한국 노사관계의 변화와 문제점, 그리고 21세기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2. 논의 범위 및 구성'에 따르면 이 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1987년을 기점으로 한국 노사관계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1987년 이전의 노사관계는 근대화 시기와 민주화 운동 시기로 나누어 다루며, 1987년 이후의 노사관계는 노동조합의 폭발적 증가, 노사관계의 특징 변화,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 등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한국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대립과 갈등의 지속, 분배 중심의 노사관계, 교섭구조와 문화의 문제, 노조 조직과 운동의 한계, 기업의 노사관계 전략 미흡, 정부 노동정책의 일관성 결여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21세기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협력과 참여, 생산 중심의 노사관계 구축, 다층적 사회적 합의 구조 구축, 교섭구조 및 문화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근로자 참여제도 발전,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처럼 이 문서는 1987년 이전과 이후의 한국 노사관계 변화, 그로 인한 문제점, 그리고 21세기 노사관계의 발전 방향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2. 한국 노사관계의 변화
2.1. 1987년 이전 노사관계
2.1.1. 근대화 시기의 노사관계
근대화 시기의 노사관계는 일제 식민지하의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그 기초가 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일본 제국주의 자본가와 이들에게 고용된 한국인 근로자 사이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었다. 이는 노사관계가 단순한 근로조건 개선이나 임금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반식민지 저항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계급투쟁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내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경영자를 교환과 협력의 대상이 아닌 투쟁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이들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민족해방운동과 결합되면서 노동운동은 정치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이처럼 식민지 시대 노동운동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고, 이에 따라 일제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2.1.2.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
1987년 6월 29일 민주화 선언 이후 한국의 노사관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억압되었던 노동운동의 열기가 분출되면서 노동조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해방 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주로 반일투쟁의 성격이 강했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 운동과 밀접하게 연계되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노동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민주화 요구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투쟁이 이어졌다.
1987년 6월 민주화 선언 이후에는 노동운동이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억압되어왔던 노동3권을 행사하며 적극적인 조직화에 나섰다. 노동조합 수가 2,742개에서 7,883개로 증가했고, 조합원 수도 105만 명에서 193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파업 건수와 파업 참가자 수, 근로손실일수도 급증했다.
노동운동의 활성화는 기존의 권위주의적이고 대립적이었던 노사관계 구조를 크게 변화시켰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등 자신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강력히 요구했고, 기업들은 이에 직면하여 노동운동에 대한 대응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정부 또한 노사 간 갈등을 조정하고 노동정책을 재정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처럼 민주화 운동과 함께 폭발적으로 고양된 노동운동은 한국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노사 간 대립과 갈등, 분배 중심의 문제점 등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을 창출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2. 1987년 이후 노사관계
2.2.1. 노동조합의 폭발적 증가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 권위주의적 노사관계가 붕괴되면서 노동조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987년 7월부터 1989년까지 약 2년 반 동안 노동조합수는 2,742개에서 7,883개로, 조합원수는 1,050천명에서 1,932천명으로, 그리고 조직률은 11.7%에서 18.6%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노동조합 조직의 폭발적 증가는 개발연대의 사용자 지배적 노사관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국가사회적으로도 노동조합이 정치와 국가경영의 한 축으로 등장하게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노동조합 조직의 급증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기업경영과 경제사회 모형으로 하여금 제도적 정합성을 상실하게 하였다.
그러나 1989년까지의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던 노동조합 조직이 1990년 이후 감소세로 반전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조직화가 비교적 용이한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1989년에 이미 종업원 조직률이 60%, 그리고 사업체 조직률이 55.4%에 달해 일종의 조직화 포만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둘째,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들어서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조직화를 주도하던 강성 노조의 이념지향성이 강한 주장의 설득력이 약화되었다. 셋째, 1986-88년간의 3저 호황이 끝나면서 89년 하반기 이후 경제위기 의식이 심화되었고 정부가 재야 강성 노동조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넷째,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이 허용되어 있지 않은 점도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 결과 1997년말 현재 노동조합수는 5,733개, 조합원수는 1,484천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