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양성합일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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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생성일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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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양성합일론에 관하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교의신학의 역사와 문헌
1.1. 교의의 형성
1.2. 초기 교회의 교의
1.3. 콘스탄티누스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까지
1.4. 로마 가톨릭의 교의신학
1.5. 루터파 교의학
1.6. 개혁파 교의학

2.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430)
2.1. 어거스틴의 생애
2.2. 어거스틴의 생애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전도의 열정
2.3. 어거스틴의 사상과 신학
2.4. 어거스틴의 저작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교의신학의 역사와 문헌
1.1. 교의의 형성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리의 형성이나 신학과 관련하여 교회의 전통을 과대평가하거나 또는 그와 반대로 평가절하 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아돌프 폰 하르낙(Adof von Harnack)은 초기 교회의 교리발전을 기독교와 이교 인 그리스 철학 문화의 혼합으로 보았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그 내면에 예수의 형상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실현한 도덕적 실재로 보았으며, 기독교 신학은 교의의 역사 전체를 제거한 후에, 주로 산상설교에서 발견되는 예수의 원래 복음으로 단호하고 철저하게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빙크는 이것 역시 교의 적 이라고 말한다. 바빙크에 의하면 하르낙은 교회의 교의를 자신의 것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카톨릭의 입장은 기독교의 진리가 성경과 전통에 완전히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도 무오 한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성경을 교리에 종속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교리를 성경에 종속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에 계속해서 직면한다. 종교개혁은 역사에 대한 과소평가와 과대평가 모두를 조심했다. 종교개혁은 모든 전통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거짓되고 부패한 전통만을 반대했다. 개혁파 교회는 사도신경과 처음 네 번의 공의회가 채택한 신조들을 받아들였고, 교부들의 신학,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활용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갔고, 성경에서 흘러나오고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전통만을 인정했다.


1.2. 초기 교회의 교의

초기 교회의 교의는 기독교 복음의 근본 요소들이 실천적인 문제들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시기였다. 교회는 기독교의 진리를 복음의 지배하에 살아가는 실천적 삶으로 전환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강조점이 "그노시스"(지식)이 아니라 거룩한 삶에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회가 이교 문화의 공공연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성찰과 변증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방세계는 학문적인 공격을 시작했고, 성경의 여러 책들의 진정성과 진실성, 계시와 기적, 성육신, 속죄, 용서, 부활, 영원한 형벌 같은 교의들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계시의 내용을 숙고하고, 거짓에 맞서 참된 기독교적 그노시스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신학은 기독교에 대한 공격에 자극을 받아 그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이성적 활동에는 당연히 이교적 철학 지식이 필요했다. 신학은 철학의 도움을 받고 동맹을 맺으면서 시작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이 이 작업을 먼저 시도했지만, 영지주의자들과 기독교 변증가들 간에는 방식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철학이 재료가 되어 죄와 구원 개념의 내용을 형성했지만, 변증가들에게 철학은 주로 형식적인 것이었다. 변증가들은 기독교가 참된 철학이라는 것, 그래서 기독교 외부에서 들어온 모든 진리요소를 자기 안에 통일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변증가들의 초창기 신학은 빈약하고 편파성과 오류로 손상되어 있었다. 곧 변증가들 가운데 견해의 차이가 생겼고, 다양한 경향과 학파들이 생겨났다. 그중에서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락탄티우스, 이레네우스로 대표되는 학파는 철학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철학의 위험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들은 교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테르툴리아누스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 몇 가지 용어를 도입하여 이후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학문적으로 진술하여 동시대의 의식에 전달하려는 열망을 보였다.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신앙과 학문 사이의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신학은 신앙의 내용을 학문으로 발전시켜서,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확실성과 타당성을 자체 안에서 발견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3세기에 로고스가(그리고 성령이) 성부 대해 갖는 관계와 관련해서 갖가지 논쟁이 내부적으로 발생했다. 교회는 일위 신론적 단일신론의 두 유형인 역동적 단일신론 및 양태적 단일신론과 싸우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성부와(그리고 성령과)구별되신다는 교리를 니케아 공의회(325)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 공식화했다.


1.3. 콘스탄티누스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까지

그리스도인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등장과 관용칙령(313)으로 인해, 교회에 대한 외적 압박은 이단이라는 내적 압박으로 대체되었다. 주요한 교의의 발...


참고 자료

Bavinck, Reformed Dogmatics, abrideged ed, John Bolt(편), 김찬영, 장호준,(역)『개혁파 교의학』(서울: 새물결플러스, 2015)
ㆍTONY LANE,「기독교 사상사」 3판 (서울 : 나침반사, 1987)
ㆍ라이온사 편,「교회사 핸드북」재판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91)
ㆍ어거스틴의 생애「미카엘 마샬 지음/김원주 옮김」
ㆍ세계교회사 「도서출판 근화/ 김기련 著」
ㆍhttp://ss.kehc.org/
ㆍhttp://www.godislove.net
ㆍhttp://theolog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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