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바우하우스의 시작
1.1. 등장배경
1.1.1. 독일 사회의 재건과 독일공작연맹의 영향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불안정한 독일 사회를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따라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의 노력이 주목받게 되었다. 독일공작연맹은 1907년 설립된 단체로, 예술과 산업의 조화를 통한 독일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단체는 질적 성장과 표준화를 표방하며 점차 발전해나갔다. 또한 이 시기 피에트 몬드리안, 바실리 칸딘스키, 카지미르 말레비치 등 기하학적 추상 양식이 등장하며, 이는 데 스틸에도 영향을 미치며 조형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터 그로피우스가 중심이 되어 1919년 마이마르에 바우하우스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1.1.2. 기하 추상 양식의 등장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3.7~1944.2.1),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2.16~1944.1.13), 카짐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2.23.~1935.5.15) 등 기하 추상 양식이 등장하였다". 이들 작가들의 기하 추상 양식은 데 스틸에도 영향을 미치며 조형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즉, 기하학적 추상 양식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예술 양식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싹트게 된 것이다.
1.2. 어원
1.2.1. '건축하는 집'이라는 의미
"바우하우스란 독일어로 '건축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중세 시대 건축 집단인 '바우휘테(Bauhütte)'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들은 교회 건축을 위해 모인 건축가, 석공, 목수 등의 집단을 일컫는 용어였다. 바우하우스 학교의 창립자 발터 그로피우스는 이러한 중세 공동체 정신을 계승하여 건축을 중심으로 미술, 공예 등 모든 조형예술의 통합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즉, '건축하는 집'이라는 어원에는 건축을 통한 통합 예술의 이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1.2.2. 미술공예운동의 정신 계승
바우하우스는 19세기 후반에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공예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윌리엄 모리스를 중심으로 한 미술공예운동은 기계화와 산업화에 따른 대량생산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수공예 중심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였다. 이는 순수 미술과 실용적 공예의 구분을 허물고 예술과 일상의 통합을 지향하였다.
바우하우스는 이러한 미술공예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예술과 기술, 이론과 실기의 통합을 교육 이념으로 삼았다.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는 "모든 조형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건축"이라며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공예 등 모든 예술 분야를 통합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바우하우스는 전통적인 학문 체계를 거부하고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실습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바우하우스는 미술공예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예술과 일상, 창조와 생산의 장벽을 허무는 새로운 교육 체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는 근대 디자인 교육의 모태가 되었으며, 현대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가치로 이어지고 있다.
1.3. 설립목적
1.3.1. 건축을 통한 미술 분야의 통합
건축을 통한 미술 분야의 통합이다. 바우하우스의 초대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는 모든 조형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건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건축가, 화가, 조각가는 건축이 전체와 각 부분을 포함한 총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그들이 공예로 돌아가 창조적 상상력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