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근대 사회와 공간
1.1. 공간의 모더니티
공간의 모더니티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공간에 대한 인식과 표상이 변화하는 양상을 의미한다. 근대 이전까지 공간은 단순히 사물과 사물을 구분해주는 경계선 정도로 간주되었지만, 근대에 들어 공간은 보편적이고 균질적인 실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먼저, 고대 철학자들은 공간을 비존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보았다. "자연에는 진공이 없다"라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우주가 충만한 상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공간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경계선의 개념에 불과했다. 이러한 고대의 우주론적 체계는 중세에 이르러서도 지속되었는데, 기독교 사회에서는 신과 천사가 있는 천계와 지옥이 동질적으로 비교될 수 없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공간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근대인들은 더 이상 우주론적 체계를 요구하지 않았고, 현실 속 운동하고 변화하는 사물들의 정량적 관계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학과 기하학이 중요해졌고, 균질성과 계산 가능성에 입각한 좌표계가 등장했다. 데카르트가 창안한 해석 기하학 체계는 공간이 모든 사물보다 선험적으로 존재해야 함을 요청했고, 이를 통해 공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적 체계 안에서 "투명한 빈 상자"로 재현되었다.
이처럼 근대적 공간 개념은 질적 차이보다는 양적 관계를 중시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또한 좌표계의 도입으로 인해 모든 위치가 상대화되고 관찰자의 시선에 투명하게 표상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공간은 근대 과학주의적 세계관의 산물이자 표상 가능한 실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공간의 모더니티는 근대성의 핵심적인 토대가 되었다. 근대 국가는 지도를 통해 영토를 명확히 설정하고 내부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로 출현했으며, 화폐는 국가와 긴밀히 결합하여 근대적 공간의 보편성을 구축했다. 요컨대 근대성은 특정한 방식의 공간 표상과 깊이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1.2. 공간의 사회성과 근대적 배치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실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다. 근대 사회에서 공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배치되어 사회적 관계와 개인의 행동양식을 규정하게 된다.""
근대 사회의 공간은 '동질적이고 텅 비어 있는' 시간관념과 유사하게 표상된다. 시간이 단순히 시계 바늘의 움직임으로 측정되듯이, 공간 또한 균질적인 '상자'로 인식된다. 삶의 다양한 국면들이 이러한 '상자'에 차곡차곡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공간은 결코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수준에서 분절되어 '어떤' 공간으로 나타나며, 그 공간마다 고유한 규칙과 리듬이 작동한다. 가정, 학교, 공장 등 사회적 장소들은 각자의 논리에 따라 기능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공간의 배치는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한다. 근대 사회는 전 사회를 '교육의 현장'으로 만들어 개인을 특정한 공간에 적합한 주체로 훈육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전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근대 사회의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 부르주아 가정은 사교와 정치의 공적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국가가 가족생활의 내밀성을 보장함으로써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즉, 공간의 배치는 근대 사회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근대 사회에서 공간은 사회적 관계를 구조화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공간의 배치는 근대 사회의 규율 권력이 작동하는 장이자, 특정한 주체를 생산해내는 기제였다고 할 수 있다.""
1.3. 영토 공간의 근대
1.3.1. 지식, 지리, 화폐의 보편 경험
근대 사회에서 '지식, 지리, 화폐'는 보편 경험의 핵심적인 성분으로 작용하며, 이는 곧 국가적 영토성의 구축과 그 안정성 확보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지식의 측면에서는 "수학적 지식의 균질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근대 국가 성립 과정에서 수학적 지식의 공통성은 사회적 통일성과 보편성을 보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기하학과 수학을 통해 사물의 움직임과 관계를 정량화하고 일반화할 수 있게 되면서, 이는 곧 근대적 공간 표상의 기반이 되었다. 다양한 질적 차이들이 숫자와 수식으로 환원됨으로써 통합된 공간 인식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둘째, 지리적 측면에서의 공속성(共屬性)은 근대 국가의 영토적 경계 설정과 관련된다. 정확한 지도 제작은 근대 국가의 중요한 국책 사업이 되었고, 이를 통해 국토가 '대상화'되고 통치의 대상이 되었다. 즉 지도는 공간을 '사회'로 생산해내는 강력한 도구로 작동했다. 국가는 지도 위에 영토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경계를 내부적으로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로 상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막연했던 영토 관념이 구체화되고 국가와 일체화되었다.
마지막으로 화폐의 측면에서는 "화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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