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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얀 전쟁: 파병과 민간인 학살
1.1. 월남전에 대한 정부와 군부의 입장
월남전에 대한 정부와 군부의 입장은 대단히 복잡하고 다면적이었다. 당시 정부와 군부는 월남전 참전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약 5만 5천명의 젊은이들을 월남에 파병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군사원조와 장기차관을 도입할 수 있었다. 이는 정부의 경제발전 정책에 중요한 자금줄이 되었다.
한편 군부는 월남전 참전을 통해 군사력 증강과 군의 위상 제고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당시 군부는 월남전을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군사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특히 한국군이 미군의 전략적 보조세력으로 기능하면서 첨단 군사 장비와 전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처럼 정부와 군부는 월남전 참전을 통해 각자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정부는 경제발전을, 군부는 군사력 증강과 위상 제고를 목표로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부와 군부의 입장은 월남전에 파병된 장병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2. 민간인 학살과 피해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피해는 전쟁의 참혹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첫째, 월남전 당시 한국군은 미군의 "수색소탕작전"(Search and Destroy)에 주로 동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군 당국은 무엇인가 게릴라 근거지라고 판단한 지역을 공중폭격으로 제압하고, 한국군이 지상군으로 투입되어 생존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즉결처분하는 방식으로 "초토화 작전"을 전개했다"" 이러한 초토화 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이미 실험을 완료했던 잔혹한 전략이었다.
둘째,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있다. 미국의 "불사조 작전"(Phoenix Operations)의 일환으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한국군이 이에 관여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실제로 당시 미 사령관 웨스트 몰랜드는 자신의 입으로 한국군을 "수색소탕작전"에 주로 동원했다고 밝혔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인 대량학살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의용군들의 경우 민간인 학살이 전혀 없었는데, 이는 이들이 전쟁에 대한 뚜렷한 명분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은 월남전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처럼 민족해방전쟁인 월남전의 성격을 모른 채 파병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월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단순히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한국군이 종속되어 자행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만행이었다. 이는 전쟁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정의감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결국 한국군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지금도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한 실정이다.
1.3. 한국군의 역할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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