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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의 문화
1.1. 한글의 창제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한자를 써 왔으나 한자의 사용으로 인하여 우리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의사소통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문자가 요구되었다.
조선의 4대왕인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중심으로 정음청을 설치하였고, 여기에서 음운을 연구하여 한글을 창제하였다. 한글은 중국의 문자인 한문에 비해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원리로 구성되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지었고, 1443년에 훈민정음을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불교의 경전, 농업서적, 윤리서, 병서 등을 한글로 번역하거나 편찬하는데 기여하였고, 유교주의 교육과 지식 보급 및 국문학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졌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는 서리들로 하여금 훈민정음을 배워 행정 실무에 이용하게 하고 관리들의 채용에 훈민정음의 시험을 치르게 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한문을 알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도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민족 문화의 기반이 더 넓고 확고해졌다.
1.2. 역사서의 편찬
1.2.1. 고려 왕조의 역사 정리
고려 왕조의 역사는 자주적인 입장에서 재정리되었다. 고려사가 편찬되었고, 이후 편년체의 역사서인 고려사절요가 편찬되었다. 편년체의 역사서인 고려사절요는 고려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것으로, 고려사의 핵심부분들을 정선한 것이다. 성종 때에는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통사인 동국통감이 간행되었는데, 이는 훈구와 사림의 협력 하에 이루어졌다.
1.2.2. 조선중기와 후기의 역사서 편찬
16세기에 이르러 사림의 정치 의식과 문화 의식을 반영하는 새로운 사서가 편찬되었다. 16세기에는 중국을 숭상하는 존화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파악하였다. 중화사상이 발달하면서 기자가 세운 기자 조선이 주목을 받았고, 유교 문화와 대립되는 고유 문화는 이단시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후기에는 박상의 동국사략, 이이의 기자실기 등이 편찬되었다. 박상의 동국사략과 이이의 기자실기 등을 통해 기자 조선의 역사를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고유 문화보다는 중화사상과 유교문화를 우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16세기부터 조선후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사대주의적 역사 인식이 강화되었다.
1.3. 지리서와 윤리서
1.3.1. 지도의 제작
15세기 초에는 세계 지도인 역대제왕혼일강리도와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가 제작되었다. 역대제왕혼일강리도는 세계 지도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과 중앙아시아, 아라비아반도, 유럽 일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지도는 과거 원나라 지도와 고려 지도를 토대로 제작되었으며, 실제 규모와 방향을 정확히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세계지도였다.
전국 지도인 팔도도는 몇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는데, 그중 양성지의 팔도도는 과학 기구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제작되었다. 양성지는 압록강 이북까지도 상세히 기록하는 등 국토 전체를 매우 자세히 표현하였다. 팔도도는 조선의 팔도 지역을 정확히 나타낸 전국 지도로 평가받고 있다.
16세기 중엽에도 많은 지도가 제작되었는데, 그중 조선방역지도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중앙집권과 국방 강화를 위해 국토의 자연 환경과 인문 지리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지도를 제작하였다.
1.3.2. 세종와 성종 때의 지리지
세종와 성종 때의 지리지는 조선시대에 국토의 자연환경과 인문지리에 관한 정보를 정리하여 편찬한 중요한 자료들이다.
세종 때에는 지리지의 편찬이 추진되어 팔도지리지가 완성되었다. 팔도지리지에서는 전국 8도의 지리, 역사, 정치, 사회, 경제, 산업, 군사, 교통 등의 내용을 실었다. 이를 통해 국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관리가 가능해졌다.
성종 때에는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전국에 있는 군·현의 연혁, 지세, 인물, 풍속, 성씨, 고적, 산물, 교통 등의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