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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시황의 군주상과 통일 리더십
1.1. 진시황 생애 개괄
1.1.1. 진시황 출생 ~ 통일 이전
진시황의 출생 및 통일 이전 과정
진시황의 본명은 정(政)으로, 기원전 259년 조나라 인질로 있었던 진왕족 자초와 조나라 여불위의 첩 조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불위의 계획으로 자초는 당시 진나라의 왕이 총애하던 회양부인의 양자가 되었고, 어린 시절 정은 조나라와 진나라의 긴 전쟁으로 9세까지 타국 조나라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진나라의 왕이 죽자, 자초는 왕위에 즉위했고 이를 이어 정이 즉위했다. 정의 즉위 초반에는 여불위의 섭정, 동생 성교와 환관 노애의 반란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진압되었고 여불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불위를 몰아낸 진시황은 여러 조직들을 정비하고 위료와 이사 등을 발탁해 전국 통일의 발판을 닦아나갔다.
기원전 230년부터 6개 제후국들과의 전쟁을 거쳐 마침내 기원전 221년, 중국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사상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통일된 통치 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화폐, 도량형, 문자 등을 획일화하고 제후가 아닌 관료를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 군현제를 운영하며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였고, 북방의 흉노 침입 대비를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수리시설 확충 등 다방면에서 개혁을 단행하였다.
1.1.2. 진시황의 통일 이후 ~ 사망
진시황은 나이 26세인 기원전 230년부터 6개 제후국들과의 전쟁을 거쳐 마침내 기원전 221년, 중국 최초로 전국을 통일했다. 진시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사상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통일된 통치 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화폐, 도량형, 문자 등을 획일화하고 제후가 아닌 관료를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 군현제를 운영하며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 더불어 흉노의 침입 대비를 위해 북방에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예방 및 대처하고 원활한 농업 활동을 위해 각종 수리 시설을 확충했다. 또한 전쟁을 통해 진나라로 통일했던 6국의 지배층을 함양(진의 수도)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통해 경제력과 문화를 수도로 집중시켰다.
진시황은 장년에 접어들어 불로장생과 신선술에 집착하기도 했다. 진시황은 결국 순시하는 와중에 중국 북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1.2. 진시황의 리더십
1.2.1. 지속적인 자기 성장을 추구하는 리더
진시황은 지속적인 자기 성장을 추구하는 리더였다. 진시황은 즉위하기 전부터 상당한 독서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한비자의 책인 "고분"과 "오두" 편을 읽고 "이 책의 저자와 만나 교류한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법가 사상에 몰두해 있었다. 또한 진시황은 일 중독자였다고 하는데, 하루에 일정 분량의 문서 분석과 서류 결재를 진행하지 않으면 잠도 자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임무에 대해 철저히 통제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전국을 순시하는 와중에도 서류 처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법가 사상에서 군주는 정한 규범인 법의 존재와 그에 따른 엄격한 질서 유지가 중요했다. 이런 군주상에 맞추어 진시황은 지속적인 독서와 학습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이런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