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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1.1. 현대 신학과 여성신학
여성신학은 현대 신학의 흐름 가운데서 등장하였을 뿐 아니라 현대 신학의 주요한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계몽주의 이후 현대 사회의 정신적 풍토를 배경으로 등장한 페미니즘이 그러했듯이, 여성신학도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현대 신학의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현대 신학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 권위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현대 신학은 인간의 경험을 중요시하고,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신학을 전개하려고 한다. 신학은 더 이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신을 전제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고, 대신 일종의 신앙론이나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성찰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세기 이후 신학에서는 인간학적 전향이 일어났다.
여성신학은 이러한 현대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을 바탕으로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이 이루어 놓은 이러한 인간학적 전환이 없었다면 여성신학이 자신의 독특한 주장을 펼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지적 성실성, 그리고 신앙고백, 교리, 성서와 성서 말씀에 대한 갖가지 해석들을 포함하여 모든 종교적인 주장은 역사적인 한계와 상대성을 갖는다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신념은 여성신학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여성신학은 현대 신학의 관점을 더 철저히 관철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종교의 역사성에 대한 현대 신학의 확신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신학자들은 그동안 현대 신학에서조차 여성의 존재나 여성의 경험이 사실상 무시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남성의 관점과 남성의 경험을 기준으로 신학을 전개하면서 그것이 마치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경험을 보편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호도하여 왔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신학은 그동안 서양의 교회와 현대 신학은 서구 백인 중산층의 관심을 대변하면서 종교를 사적인 영역에 안주하게끔 하였고 그래서 현실을 떠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게 만듦으로써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에 대하여 무관심하였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여성신학은 현대 신학이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여 왔던 주도적인 관점, 경험, 보편성, 표준을 거부하고 주변부의 이야기, 진리의 다원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1.2. 여성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여성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는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에 빗대어 이해할 수 있다. 여성신학은 신학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 이후 현대 세계는 흔들릴 수 없는 기초 위에 지식을 쌓아 올리고자 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러한 확신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지식에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도가 작용하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성신학 역시 세속적인 근거나 신적 계시를 근거로 신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반정초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여성신학은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지식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대신 여성신학은 인간과 사회의 변혁을 위하여 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로티의 포스트모던 실용주의와 유사한 맥락이다.
여성신학의 이러한 인식론적 실용주의는 자연스럽게 신학의 과제가 탐구와 증명이 아니라 해석에 있다고 보게 만든다. 이는 근본적으로 객관적인 진리란 없고 다양한 해석만이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고방식과 통한다.
여성신학에서 성서는 그 내용 자체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계기가 되는 힘에 있다. 성서는 더 이상 권위의 원천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여성의 투쟁에 있어서의 자원으로 활용된다. 이에 피오렌자는 성서를 신화적 원형이 아닌 역사적 모범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신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여성신학이 주장하는 관점조차 상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여성의 해방을 위한 힘을 상실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촙은 여성신학이 현대 인식론이나 포스트모던 인식론이라기보다는 비판 이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판 이론은 실천, 사회 관계, 제도 속 상징적 구조와 의미를 분석하여 변화와 변혁을 추구하되, 보편적인 논리를 자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