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사회문제론 질병과 낙인 독후감 작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한센병과 근대의료
2.1. 한센병의 역사
2.2. 한센병과 의학지식의 발달
2.3. 한센병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
3. 제국주의와 한센병
3.1. 인종주의와 한센병에 대한 관점
3.2.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한센병 정책
3.3. 소록도 형성과 한센인에 대한 차별
4. 낙인과 차별
4.1. 한센인에 대한 외모 변형에 따른 혐오
4.2. 전염에 대한 공포와 한센인 배제
4.3. 부랑인 이미지와 한센인 차별
5. 소록도와 음성나환자촌
5.1. 소록도의 강제격리와 인권침해
5.2. 음성나환자촌 정착 사업과 한계
6. 해방 이후 한센인의 상황
6.1. 국가 건설 과정에서의 배제
6.2. 소록도 환자 학살 사건
7. 현대 사회의 감염병과 한센병
7.1. 병균 중심의 보건·의료체계
7.2. 감염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
8. 결론
9.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한센병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로 표현될 정도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질병이다. 그런 만큼 한센인은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치료와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소외와 격리, 그리고 강제 수용의 대상이었다. 한센병은 병의 진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병흔으로 인해 '문둥이' 및 '천형' 같은 언어로 명명되어왔으며, 사회로부터 혐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아왔다. 대부분 한센병이 발병되면 이웃과 가족에게 버림받은 후 강제수용과 격리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으며, 완치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사회의 편견과 냉대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센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한센병을 '문명국의 수치'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한센인들을 제거하고자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한센인들이 겪은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시작으로 여러 매체에서 한센인들이 겪은 사회적 차별과 인권침해에대해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2. 한센병과 근대의료
2.1. 한센병의 역사
한센병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중국의 의학서에 이미 한센병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어 상당한 역사를 가진 질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센병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무렵이다. 1873년 노르웨이의 의사 아르네오우어 게르하르트 한센이 한센병균을 발견하면서 한센병이 감염병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센은 이 병균을 발견한 이후 한센병의 전염성을 강조하면서 강제격리 정책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센병은 '세균에 의한 감염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전세계적으로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이 펼쳐지게 되었다. 가난한 농민 출신이 많았던 한센병 환자들은 과학의 힘 앞에 저항할 수 없었고, 강제격리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한센이 박테리아를 발견한 순간 다른 요인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적 시각도 한센병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결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한센병 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확산되었다.
2.2. 한센병과 의학지식의 발달
한센병과 의학지식의 발달은 근대 의료체계 형성에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다. 1873년 노르웨이 의사 아르메우어 게르하르트 한센이 한센병균을 발견하면서, 한센병은 세균 감염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한센병균 발견 이전에는 질병의 원인을 천형이나 신의 벌로 여기거나, 나쁜 기운 등의 요인으로 보았다. 그러나 한센이 박테리아를 발견한 순간 질병의 근원이 세균에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부각되었고, 이를 근거로 한센병 환자를 격리하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특히 백인 중심의 근대화와 문명화에 대한 관점에서 한센병은 열등한 문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들은 식민지 한센병 환자에 대한 철저한 격리 정책을 정당화했다. 과학적 지식과 인종주의적 관점이 결합하면서, 제국주의 국가들은 한센병 환자를 지배와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이 확산되었고, 특히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가장 철저하게 이를 집행했다.
따라서 한센병은 근대 의학지식의 발달과 함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결합하면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는 소록도와 같은 격리시설 설립으로 이어졌고, 한센병 환자들은 강제격리와 인권침해를 당하게 되었다. 즉, 근대 의학지식의 발달은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배제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2.3. 한센병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
한센병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은 근대 의학지식의 발달과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주의가 결합하면서 형성되었다. 1873년 노르웨이 의사 아르메우에르 게르하르 한센이 한센병균을 발견하면서 한센병은 세균감염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격리와 통제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특히 백인들은 한센병을 열등한 문명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문명화된 유럽과 미국을 한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식민지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강제격리를 확대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관점은 근대 의학지식과 결합하여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와 통제를 제도화했다.
일본 제국주의 역시 한센병 통제를 위해 1917년 소록도자혜의원을 설립하고 강제격리 정책을 실시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격리와 추방 요구가 높아졌고,...
참고 자료
김재형(2021).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돌베개.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김재형, 돌베개, 2021.
구도완·김종엽·노성훈·박경태·백영경·엄기호·윤태호·이수정·이정희·장경호·조효제·최병두·한건수·한재각·황정미 공저(2017).
김재형(2021),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