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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면극의 성립과 발전
1.1. 들어가며
조선 후기에는 신분제의 이완, 친족 체계의 변화 등 전환기적 조짐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신분 간의 갈등이 격렬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상 분야에서도 있었는데, 그간 조선을 지배하던 성리학에 맞서 개혁적인 학문들이 태동하게 되었다. 그중 실학은 조선 후기의 사회적·경제적 변동에 따른 여러 모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개혁적 사상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 분야에서도 실학과 같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담은 사실주의적 사조가 대두되게 되었다. 이렇듯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 변모와 함께 결부되어 판소리, 본산대놀이(가면극), 꼭두각시놀이(인형극)가 18세기 전반에 성립되었다.
1.2. 가면극의 기원
1.2.1. 산대희 기원설
안확, 김재철, 양재연, 이두현 등은 산대희 기원설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나례가 신라의 처용무가 되고 고려 시대에 와서 산대희가 되었으며, 이 산대희가 곧 조선 시대의 산대놀음의 전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안확(1932)은 처용무, 나례, 산대희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해 송석하(1935)는 나례와 산대극은 서로 다른 것이며, 처용무와 산대극의 조형미술상, 무용동작상, 음곡가요상의 차이점을 지적하며 반박하였다.
이후 김재철(1939)은 가면극이 신라의 연희와 고려의 산대잡극을 거쳐 조선의 산대놀음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조원경(1955)은 나례에 가면무극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없다며 반박하였다.
한편 양재연(1955)과 이두현(1969)은 산대희 기원설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였다. 이상의 산대희 기원설에 따르면 산대극은 산대희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의 산대희가 산악, 백희에 해당하는 연희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사신 영접 행사나 나례 등에 이런 연희들이 공연되었다는 점에서 이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2.2. 기악 기원설
기악 기원설은 1950년대에 이혜구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이혜구는 일본의 기가쿠와 양주별산대놀이 및 봉산탈춤을 비교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연희 장면의 비교로 둘을 같은 계열의 연희로 보고, 과장별 등장인물의 성격이 같다 해석하는 것은 섣부르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훈초』의 내용은 백제의 미마지가 기악을 일본에 전수한 후 600년이나 지난 후의 것이라 기가쿠 자체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처음으로 기악을 전래한 오국(吳國)의 위치에도 논란이 많다. 이러한 기악 기원설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기악과 현전하는 가면극을 연결할 만한 중간 단계 자료의 발굴이 필요하다. 나아가 불교 선전극이자 묵극인 기악이 어떻게 파계승 풍자를 비롯한 민속 풍자극을 담아내면서 대화, 노래, 춤, 연기가 함께하는 연극으로 변모했는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1.2.3. 제의 기원설
제의 기원설은 크게 무속제 기원설과 풍요제 기원설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무속제 기원설은 1980년대 박진태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는 신화와 굿, 제의와 가면극의 상관성을 구조적으로 고찰한 결과이다. 특히 하회별신굿에서 주지춤, 백정놀이, 할미놀이, 파계승놀이, 양반·선비놀이 등의 과장들이 가면극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근거로 한다. 이처럼 무속제 기원설은 가면극의 기원을 신화와 제의에서 찾고 있다.
한편, 풍요제 기원설은 1960년대 조동일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는 마을굿을 무당·제관·농악대가 주관하는 행사로 나누고, 그중 농악대 주관의 풍농굿에서 가면극이 출발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즉, 가면극의 형성을 민간적 전승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은 삼국시대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산악, 백희 연희자들에 의해 성립된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을 간과하였다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제의 기원설은 가면극의 기원을 신화와 굿, 제의 등 민속문화에서 찾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과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을 모두 포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2.4. 실제적 목적 기원설
실제적 목적 기원설은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고찰한 견해이다. 김일출(1958)은 가면극이 원시인이 짐승의 소리를 흉내 내거나 모피를 뒤집어쓰는 특수한 수렵 방식이나 또는 토테미즘과 관련된 의식 등 실제적 목적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가면극 일반의 기원을 표명한 것이지 한국 가면극의 발생에 대한 직접적 견해가 아니라는 한계를 지닌다"".
1.2.5. 산악·백희 기원설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이 하회별산굿놀이나 강릉관노가면극과 같은 마을굿놀이에서 유래한 가면극이라면 한국 가면극의 주류인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은 산악 또는 백희라 불리던 연희들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이다. 이러한 연희들은 삼국시대 중국에서 유입되었으며 고려·조선조에 와서 가무백희, 잡희, 산대잡극, 산대희라 불리며 꾸준히 연행되었다. 그러다 조선 시대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전문 연희꾼인 반인들이 18세기 전반 본산대놀이를 성립시킨 것이다.
1.3. 가면극의 계통
1.3.1.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은 애오개,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특히 애오개와 사직골의 본산대놀이를 놀던 본산대패는 지방 순회공연을 자주 다녔는데 이것이 각 지방의 가면극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