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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1.1. 조선의 근대화와 국제관계의 변화
1.2. 갑신정변과 김옥균의 역사적 위상
1.3. 대한제국과 홍종우의 개혁 구상
2. 본론
2.1. 조선의 근대화 과정과 국제관계 변화
2.1.1. 19세기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
2.1.2. 조선 정부의 개혁과 개방 정책
2.1.3. 청나라의 영향력 강화와 조선의 대응
2.2. 갑신정변과 김옥균
2.2.1. 갑신정변의 배경과 전개
2.2.2. 김옥균의 개혁 구상과 한계
2.2.3. 갑신정변 이후의 영향
2.3. 대한제국과 홍종우의 개혁 구상
2.3.1. 홍종우의 황제 중심의 자주적 근대화 계획
2.3.2. 중추원 의회 개설을 둘러싼 논쟁
2.3.3. 일본의 식민지배와 홍종우의 좌절
3. 결론
3.1. 김옥균과 홍종우에 대한 재평가
3.2. 역사적 교훈과 현재의 시사점
3.3. 향후 과제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1.1. 조선의 근대화와 국제관계의 변화
16세기부터 시작된 서세동점은 상업적인 측면과 기독교적인 측면의 온순한 진출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 서양 국가의 교역 목적의 주도적 진출이 진행되었으며, 조약을 체결하는 등 그 성격이 변화했다. 이러한 서구의 19세기 동아시아 진출은 조선, 일본, 중국 간의 질서에 큰 파장을 미쳤으며, 삼국은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화이 질서로부터 만국공법의 질서로 전환되는 19세기 속 중국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조공책봉 체계를 수호하기 위해 획책했다. 세계차원에서는 하나의 지역 질서였지만 동아시아 국가 차원에서는 국제질서였다. 국가 간의 유교 관계로서 사대 자소를 추구하고 위로부터의 아래를 승인하지만, 실질적인 간섭을 이행하지 않는 상호 평화적인 질서였다.
일본은 화이질서에 편입하거나 편입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만국공법의 도입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적으로는 탈아론을 주창하며 일본의 정체성을 아시아국가가 아닌 유럽 국가로 규정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중국의 속방국으로서 독자적으로 주권을 지키기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동아시아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1894년 청일전쟁,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국제법 질서의 편입하고 아시아 국가 중 만국공법을 대표하던 일본의 승리로 인해 동아시아 화이질서는 대부분 만국공법으로 대체되었다.
화이질서와 만국공법 질서가 충돌하는 과도기적 상황 속 조선의 정부와 여러 지식인은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조선은 고종 친정이 시작된 1873년부터 개화와 관련된 정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이 본격적으로 국제법 질서로 편입하게 된 계기는 1876년의 강화도 조약이다. 이후 조선 정부의 개혁과 개방 정책의 추진은 조선 내부의 정치환경과 외부의 외교환경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1.2. 갑신정변과 김옥균의 역사적 위상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계기로 중국의 실질적인 지배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조선 내 반청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를 인식하는 관점도 달라졌다. 한 측에서는 중화질서를 인정하는 동시에 국제법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다른 한 측에서는 중화질서를 부정하고 국제법만을 인정하고 중국이 아닌 일본과 함께 근대화를 이룩해야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후자의 태도는 급진 개화파로 분리되었으며 이들은 1884년 최초의 근대화 개혁, 갑신정변을 일으키게 된다.
일명 갑신오적이라 불린 이들 가운데 김옥균의 생각과 행적을 들여다봄에 있어 우리는 1880년대 약육강식의 침략적 세계 질서 속에 편입되어버린 조선의 현실과 이에 따른 고민, 조선을 둘러싼 국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고종은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왕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anything but 대원군 정책을 실행해야만 했으며 청의 외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는 개화정책은 너무나도 필요했다.
개화사상을 조선이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면서 발생하는 대외적인 불안감과 열등한 국가 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근대적인 문물과 제도를 수용함으로써 서구적으로 발전하고 열강 세력과 동등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근대적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조선 내부적으로는 근대화를 외부적으로 부국강병을 통한 외세로부터의 자주적인 독립을 이루는 개혁이었다.
그러나 왕실과 달리 김옥균과 비롯한 개화세력은 고종의 뜻을 같이할 수 있었고 이에 고종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양성했으며 친정 세력의 정치적 압력을 벗어나고 왕권 강화를 꾀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김옥균은 무력 정변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흥의 기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처음에는 한두 가지의 중요한 일부터 점진적으로 개혁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고종의 지원과 더불어 청을 배척하는 개화파들의 정치적 입김이 커지자, 민씨 일파가 이들의 활동을 강력하게 견제했다. 지속적인 사업 실패로 인해 조선의 근대화가 더뎌지고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바라보기만 할 수 없었던 김옥균은 개혁 방법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중흥의 기회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결국 혁명적인 방법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갑신정변으로 귀결된 것이다.
김옥균은 화이질서에서 벗어나 중국 중심의 외교가 아닌 전 세계적인 측면의 정세를 살피는 외교 정책을 지향했다. 중국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김옥균은 특히 일본의 근대화 사업에 관심을 가졌는데, 메이지 유신의 성과를 둘러보는 등의 경험은 그의 개화사상의 발전과 조선이 추구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상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조건에서 보았을 때 갑신정변을 성공하기 어려웠을 수밖에 없다. 첫 번째, 가장 큰 요인은 고종의 신임을 얻지 못한 것에 있다. 김옥균은 「벽술」에서 "군권을 위험에 빠트리고, 세력을 탐하는 구식의 무리를 소제하는 방법은 두 가지 계책이 있다. 하나는 임금의 밀칙을 얻어서 평화적으로 행사하는 것이고, 하나는 임금의 밀의를 의뢰하여 힘으로 종사하는 것이다" 를 작성하였다. 온건 개화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고종이 아끼던 신하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거부한 행동은 밀칙이나 밀외 둘 다 해당하지 못한 것으로 구식의 무리를 소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외세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청을 배척하고 자 이용한 세력은 일본이었다. 하지만 개화파의 생각과 다르게 민중과 재야 유생들은 청을 침략자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일본에 대한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었으며 침략자로 여겼다. 일본의 타도가 오히려 시대적으로 더욱더 명분이 있었다. 일본을 끌어들인 것은 개혁에 있어서 이를 받아드릴 이들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세 번째로, 대중성을 얻지 못한 것도 큰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개화파의 대외인식을 보면 고종 한 암묵적으로 정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너지는 사업과 하루빨리 근대화를 성공하여 자주독립을 이룩하고자 하는 염원을 이해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개화가 아직은 시대상과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시기를 기다려야 했다.
갑신정변은 조선의 근대화 방향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선을 둘러싼 국제적인 성격 또한 변화시켰다. 갑신정변의 실패는 개화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으며 이후 개화파 세력의 위축, 수구 세력의 정치적 입지 확장, 국가 정책의 보수화로 이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개화에 대한 사회적 정서가 부정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변화된 국제정세에서는,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었으며 친청파의 정치적인 입지 또한 강화되었다. 갑신정변 이후 톈진조약을 체결함에 일본은 청일전쟁의 시발점을 마련하였으며 이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1.3. 대한제국과 홍종우의 개혁 구상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약해진 왕권을 황제...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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