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김수근
1.1. 김수근에 대해
김수근은 1931년 2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55년 동안 200여 개 이상의 뛰어난 건축물을 설계하여 한국 현대 건축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김수근의 건축물들은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와 한국 건축 특유의 정감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거칠고 황량한 우리의 도시에 건축의 고귀한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김수근은 단순한 건축가를 넘어 건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합하려 한 한국의 대표적 문화운동가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한 것은 한국이라는 지역적 정체성, 시대적 상황, 그리고 건축의 세계사적 흐름이었다. 김수근은 이를 자신의 뛰어난 감수성으로 해석하여 독특한 건축어휘로 승화시켰다.
1.2. 김수근의 작품성격
김수근의 작품성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와 실험정신이다. 그는 건축을 단순한 기능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여겼다. 특히 초기작품들에서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건축적 언어로 구현하려 노력하였다. 자유센터와 부여박물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건축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그는 한국적 전통을 재해석하여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청주박물관과 경동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인간중심적 공간구성이다. 그는 건물의 척도와 비례를 인간의 크기와 감각에 맞추려 했다. 스킵플로어 방식으로 다양한 공간 경험을 제공하거나 진입동선을 길게 확보하여 사용자의 몰입감을 이끌어낸 공간사옥, 경동교회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벽돌이라는 소재 사용을 통해 건축의 인간화를 추구했다고 평가받는다.
셋째, 한국 고유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한옥의 선적 분절미, 자연과의 조화 등 한국 전통건축의 특성을 현대 건축어휘로 표현하고자 했다. 부여박물관과 한계령 휴게소 등에서 이러한 시도가 잘 드러난다. 동시에 그는 건축과 조경,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융합하여 총체적인 예술작품을 선보이고자 하였다.
종합하면 김수근의 작품성격은 건축에 대한 근본적 탐구와 실험정신, 인간중심적 공간구성, 그리고 한국 전통 미학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현대건축의 새로운 이념형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1.3. 김수근 연혁
김수근은 1931년 2월 20일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 건축을 처음 접한 후 건축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으며, 1950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1951년 김중업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김수근은 1954년 동경예술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하였고, 여기서 스승인 요시무라 준조를 만났다. 1958년 동경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동경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였으며, 1960년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 때 그는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참여하여 1등으로 당선되었다.
1961년 귀국한 김수근은 국회의사당 설계사무소를 개설하였고, 1963년부터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 무렵 그는 최순우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의 전통 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1965년 김수근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부사장에 취임하였고, 1966년에는 종합예술지 '공간'을 창간하였다. 이후 1967년에는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에 임명되었다.
1969년 김수근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를 사직하고 인간환경계획연구소를 발족시켰으며, 1972년에는 (주)공간그룹을 설립하였다. 이 무렵 그는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