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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철학과 인식론
1.1.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코기토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을 대표하는 합리론자로,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주장했다. 그는 세계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실체로 구분했다. 물질의 근본 속성을 "연장"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균질한 공간이자 다른 것이 들어갈 수 없는 꽉찬 공간이다. 이러한 기하학적이며 기계론적인 물질관은 근대 과학의 배경이 되었다.
한편 정신에 대해 데카르트는 순수한 사유, 즉 "코기토(cogito)"로 정의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데카르트에게 정신은 물질과 구분되는 독립적 실체이자 확실한 출발점이었다. 코기토는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정신이며, 이를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데카르트는 코기토라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강조하며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을 펼쳤다.
요컨대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물질과 정신을 엄격하게 구분했으며, 이성적 정신인 코기토가 사물의 진리를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근대 과학과 철학의 기초를 마련한 획기적인 사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2. 흄의 회의론과 경험주의
흄은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철저히 거부하고 경험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진리에 대한 합리론적 확신을 전면 부정하며, 모든 지식과 진리는 감각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흄의 회의론은 크게 세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그는 데카르트의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부정하고 물질과 정신을 모두 실체가 아닌 관념의 집합으로 간주했다. 우리의 인식은 오직 관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외부 물질의 실체를 알 수 없으며, 정신 역시 변화하는 관념들의 연결에 불과할 뿐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흄은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인과관계라고 믿는 것은 단순히 관념들의 습관적 연합에 불과할 뿐, 그것이 객관적인 필연성을 담보하는 진리는 아니다. 따라서 귀납법적 추론이나 가설 생성은 결코 보편타당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고, 단지 개연성을 지닐 뿐이다.
셋째, 흄은 진리 일반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그는 우리가 어떤 명제를 참이라고 여기는 것은 단순히 관념들의 습관적 연합에 기인할 뿐, 그것이 실제로 참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흄에게 참된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인정하는 진리는 단지 관습적이거나 실용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흄의 회의론은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합리론적 진리관을 철저히 비판하고, 모든 지식과 진리가 감각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경험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신, 인과관계, 실체 등 전통 형이상학의 핵심 개념들을 모두 부정했다. 이를 통해 흄은 경험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 나아가 근대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1.3. 칸트의 비판철학과 선험적 인식
칸트는 흄의 회의론에 영향을 받아 기존의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인식론을 제시하였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우리의 인식 능력을 면밀히 탐구하여, 인간의 인식이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선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칸트에 따르면, 인식은 경험을 통해 얻은 외부 대상에 대한 내용에서 출발하지만, 이 인식 내용이 순전히 외부 대상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험적 인식 능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감성과 지성이라는 선천적인 인식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감성의 선천적 형식인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성의 선천적 범주를 통해 경험 대상을 구조화하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가 빨갛다'고 인식할 때, 이는 단순히 사과 자체의 속성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선험적 형식 속에서 사과라는 대상을 구성하고, 빨간색이라는 속성을 지성의 범주를 통해 판단한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은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현상계에 대한 것이며, 대상 자체(물자체)는 우리의 인식 능력을 넘어선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설명함으로써, 수학과 순수 자연과학이 어떻게 보편타당한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즉 우리 정신이 선험적으로 갖고 있는 시간, 공간, 범주 등의 형식을 통해 경험 대상을 구성하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보편타당한 지식이 성립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