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분쟁
1.1. 서론
1.2. 동북공정 (東北工程)
1.3. 임나일본부설 (任那日本府說)
1.4. 난징대학살 (南京大虐殺)
1.5. 결론
1.6. 참고문헌
2. 한국사의 이해 동아시아 역사 분쟁(발해 등)
2.1. 서론
2.2. 본론
2.3. 결론
2.4. 참고문헌
3. 역사 분쟁의 해결책은 있는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중심으로
3.1. 들어가며
3.2. 중국의 '동북공정'의 내용과 배경 그리고 문제점
3.2.1. 동북공정의 내용
3.2.2. 동북공정의 배경
3.3. '동북공정' 문제에 대한 해결책
3.3.1. 현재 학계의 대응
3.3.2. 대중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
3.3.3.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분쟁
1.1. 서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에게 역사라는 소재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과거의 사실들 중에 중요한 것들을 뽑아 기록해 놓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역사를 통해, 현재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뿌리를 찾게 함으로써, 자아를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자료로써의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랑스럽고 뿌듯한 사실로써 기록되어진 역사는, 국가적 · 민족적으로 강조되어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결집체로써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게 하는 현상을 만들고, 왜곡은 그 사실과 관련된 국가들과의 다른 시각차이가 발생시켜, 결국 역사분쟁이라는 문제점을 낳게 한다. 또한 과거의 숨기고 싶은 사실을 미화시키거나 변화시키는 왜곡을 통해 역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게 한다. 기록된 역사란 승리자의 역사, 위로부터의 역사로서 남게 된 결과물이며, 민족적 사관에 의해 해석되고 미화되기 마련이다. 각 나라에서는 자신들의 과거 사실에 대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왜곡하며 미화한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분쟁은 국가별로 과거의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차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1.2. 동북공정 (東北工程)
동북공정 (東北工程)은 중국 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이 주축이 되어 국가통일(國家統一), 민족단결(民族團結), 변강안정(邊疆安定)을 목표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시행한 연구사업이다. 이는 중국(中國)의 동북삼성(東北三省)인 흑룡강성(黒龍江省), 길림성(吉林省), 요녕성(遼寧省)에 대한 역사 연구 프로젝트이다.
중국은 이 지역을 과거 만주(滿洲)라고 불리던 곳으로, 역사적 감정을 내세워 이 지역을 중화주의(中華主義) 사상에 입각하여 "동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이 지역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동북공정의 핵심 내용은 고구려,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왜곡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하나"였다고 주장하며,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강변한다. 또한 발해 유적지에 대한 단독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 표지판의 역사적 배경 축소 등의 행동을 통해 이들 역사를 중국화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동북공정은 중국의 국가통일과 민족단결을 앞세워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적인 역사 왜곡 작업이다. 이는 단순한 학술적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대응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3. 임나일본부설 (任那日本府說)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고대(古代) 한일관계사(韓日關係史)에서 가장 대표되는 쟁점이다. 한일관계사 중에서도 근대사(近代史)에서 벌어지는 쟁점은 많으나 고대사에 대한 왜곡과 쟁점은 한국에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근대사 쟁점은 기록이 많고 그나마 최근의 일이라 대응이 가능하나, 고대사는 기록의 존재가 많지 않고, 그 시대부터 일본에게 침략 당했다는 내용이 상당히 황당하고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시작으로 한일관계사에 대한 분쟁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후일 일본이 에도막부(德川幕府)를 타도하고 메이지정부(維新政府)를 세운 후 수뇌부들이 주장한 정한론(征韓論)의 기원이 되는 것으로, 한일관계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쟁점이라 할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은 남선경영설(南鮮經營說)이라고도 부르는데, 4C 후반 일본의 야마토정부(大和政府)가 한반도(韓半島)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百濟) · 신라(新羅) · 가야(伽倻)의 영토를 지배하였고, 특히 가야에 대해서는 영토 내에 일본부(日本府)를 투어 6C중엽까지 지배하였다는 논리를 말한다. 이 주장은 일본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우월의식과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의 연구는 17C 초에 시작되었고 19C 말에는 문헌고증에 의해 정설로 뿌리 내려졌다. 이 연구를 통해 3C부터 일본이 타지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고대사회가 발전하였음을 주장하며, 후일 정한론으로 발전과 일본 제국주의(帝國主義)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발전하였다. 이렇듯 임나일본부설은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를 과거의 뿌리로 삼아 근대시기 조선침략(朝鮮侵略)과 후일 식민지화 이후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황국신민화정책(皇國臣民化政策) 등 36년간의 식민통치(植民統治)를 정당화하는 논리로써 이용되었다.
따라서 식민사학(植民史學)의 극복을 논의 할 때,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비판과 부정은 불가피한 과제로 되었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몇 가지가 주장되고 있다. 먼저 가장 강조되는 첫 번째 주장은 《日本書紀》에 기록된 내용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진구황후(神功皇后)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로 건너가 7국과 4읍을 점령하였고, 이후 임나지역에 일본부가 설치되었다가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369년부터 562년까지 약 200여 년간 한반도 남부를 일본의 야마토정부가 점령하였고, 중심기관인 일본부가 가야의 임나에 설치된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다.
두 번째 주장은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에 기록된 비문의 내용이다. 비문에 나타난 신묘년(辛卯年)기록으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나 · 신라 등을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라 되어있다. 이 기사의 해석을 통해 당시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다는 증거로 삼고 있다.
세 번째 주장으로는 남조(南朝) · 송(宋) · 제(齊) · 양(梁) 서(書)에 나타난 역사기록으로 왜왕의 책봉기사이다. 이 기사에는 왜왕이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제군사왜국왕(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諸軍事倭國王)이라는 관작(官爵)을 인정해줄 것과 송서에서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듯 한 칭호를 내린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임나일본부란 명칭은 일본 측의 기록에는 상당히 보이지만, 한국...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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