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농협의 과거와 현재
1.1. 농협의 역사
1.1.1. 일제시대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기관이나 조선 민중의 자주적인 협동조합운동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금융조합, 산업조합, 농회 등이 조직되었다. 일제는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하여 빼앗은 막대한 토지를 일본인 토지회사에 헐값으로 불하하였으며 우리 농민을 일본인 소작인으로 만들어 비싼 소작료를 착취하기 시작했다. 1931년 만주 침공 이후에는 한국을 필요한 인력과 물자의 무제한 공급지로 삼음으로써 철저하게 전쟁의 제물로 전락시켰다. 이 무렵, 진정한 농민에 의한 농민의 협동조합 운동이 민간에서 싹터 전국으로 번져나갔지만, 해방이 되자 협동조합운동을 표방한 농촌단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고 농민 착취에 앞장섰던 일제하 금융조합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새로 탄생할 협동조합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다.
1.1.2. 혁명정부 - 박정희 정부 시대
1961년 농업은행과 구농협을 강제 통합시킨 혁명정부는 '정부가 상부기관으로서의 능동적인 지도를 기도한다'는 통합원칙을 통해 농협을 완전히 정부의 시녀로 전락시켰다. 우리나라의 농협이 농민의 농협으로 바로 설 수 없었던 원인은 농협의 정치활동을 법으로 금지한 것과 조합장과 중앙회장을 농민 스스로 선출하지 못하게 규정한 '농업협동조합 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있었다. 이는 한국농협운동사에 크나큰 불행의 씨앗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통합농협의 탄생은 농민들을 앞으로 잘살게 해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심어주는 '정치적 효과'는 거두었을지 몰라도 농민들에게 농협을 진정한 자신들의 자조적 협동조직으로 받아들이게 하지는 못하였다.
1.1.3. 전두환 정부 시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농업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농업부문에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 당연한 결과였다. 연이은 영농의 실패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과 빚더미에 눌려 농민들은 이농을 재촉해야 했다. 경제의 해외의존과 농업경시정책의 메카니즘 속에서 경제적 실익 없는 새마을운동 등은 농민들에게 한갓 호화스런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농업소회정책으로 농촌인구의 감소와 농가부채의 누적 등 농가경제 여건은 극도로 악화되었지만 이러한 농민들의 문제를 농협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였다. 이에 농민들은 농협이 독재정권의 농민통제기관, 정부정책의 대행기관 및 독점자본의 농민수탈 대리인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하면서 임시조치법의 폐지와 조합장 직선제 추진 등 소위 '농협 민주화 운동'을 적극 전개해나갔다. 이러한 요구는 6.29 선언 이후 사회전반의 민주화 열기를 타고 더욱 극렬하게 표출되어 마침내 임시조치법은 폐지되었고 농민조합원들의 손으로 조합장을 직접 선출하는 진정한 농민의 농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는 농협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시녀로 전락하고 관료성을 드러냈던 농협이 비로소 농민들의 자주적 협동조직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는 농협이 농민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농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전두환 정부 시대는 농업과 농협에 있어 큰 위기였지만, 동시에 농협 민주화의 기반이 마련된 중요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1.4. 국민의 정부 - 김대중 정부 시대
국민의 정부 - 김대중 정부 시대(1998~)에는 농협이 농민의 농협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1999년 감사원 감사 결과로 시작된 농협 사태는 농협이 농민에 대한 신뢰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당시 고객들에게 신뢰와 좋은 서비스로 인정받던 농협이 갑자기 '부실덩어리',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농협 등 협동조합에 대한 구조개혁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농 · 축 · 임 · 삼협 통합 문제가 제기되었다.
정부는 1999년 3월 8일 협동조합 개혁 초안을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매우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농림부장관은 "농협 등 협동조합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농민도 죽고 협동조합도 죽고 농림부도 죽는다."라고 강조할 정도로 농협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이 안에 대해서는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정부의 일방 통행적 성격이 강하다', '수요자인 농민의 입장보다는 공급자인 정부의 입장에 초점을 뒀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결국 농 · 축 · 임 · 삼협의 통합 원칙에 따라 금융, 농업경제, 축산경제, 지도농정 담당 부회장을 각각 대표이사로 하는 독립사업부제 형식의 거대 통합 협동조합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농협자치시대'를 선언한 정대근 회장 체제의 농협호가 힘찬 깃발을 올린 것이다. 정대근 회장은 1961년 농협 창립 이래 최초로 농민조합원의 대표인 조합장 출신 중앙회장으로 당선되어 한국 농협운동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는 여덟 번이나 지역농협 조합장을 지내면서 탁월한 경영능력과 풍부한 농촌 경험, 합리적이고 빠른 판단력을 인정받아 중앙회장으로 적임자로 평가되었다.
자치농협의 역사적 과제는 진정한 의미의 농민을 위한, 농민에 의한, 농민의 농협을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즉 '농민을 위하여 활동하는 농협'이 아닌 '활동하는 농민의 농협'을 만드는 일이다. '조합원의 에너지'가 곧 '농협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농협을 위해서가 아닌 조합원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는 직원을 양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농민조합원의 비판을 공개적으로 수렴하여 논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오늘의 성취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