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중세 카톨릭교회 예배의 제 형태
1.1. 중세 예배의 특징
중세 카톨릭교회의 예배는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먼저, 중세 예배는 신학과 신앙의 표준인 말씀보다는 신비한 경험과 다양한 의식들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성당에서 드려진 예배당은 매우 시각적이고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국왕과 사제, 남녀노소, 수녀들과 어린이들, 성묘와 성물들이 미신적으로 성별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징들이 사람들의 인격과 행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교회와 국가 지도자들은 신의 뜻을 위한 명분으로 여러 의식과 제도를 제정하고 부와 명예, 정치와 권력에 야합하였다. 이에 따라 지도자들은 세속적인 문화에 동화되어 무사안일과 사치와 타락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중세교회는 신앙의 내적 갈망에도 불구하고 의식과 제도의 보편화로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처럼 중세 카톨릭교회의 예배는 신학과 신앙의 표준인 말씀에서 멀어져 신비한 경험과 화려한 의식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교회와 국가 지도자들의 권력 다툼 및 세속화로 인해 형식화되고 타락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2. 예배의 정의와 규범
예배란 구원받은 백성들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구별하여드리는 신앙의 행위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친히 예비하신 하늘의 축복을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 주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배란 구원받은 백성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최대의 예의요, 경의의 행동이다.
청교도들은 십계명의 제2계명에 따라 정한 날 정한 시간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예배자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드려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배는 크게 기도와 찬양, 말씀의 선포와 헌신, 아멘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신앙고백과 연보, 주의 만찬, 중보기도, 평화의 입맞춤이 포함되었다. 예배의 요소들이 본질적이든 비본질적이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예배를 위해 성경의 원리를 따른다.
중세의 예배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의식이 표현되었다. 왜냐하면 야만족들의 유입과 주교의 권력이 증대하면서 예배는 현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야만족들이 보다 쉽게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형식과 전례들이 필요하였기에 천사, 성인, 성유물, 성화, 성상등을 숭배하도록 제도화하였다. 이 예배는 주로 지정된 장소에서 주교의 인도에 따라 정한 시간에 하나님께 드려졌다. 하지만 군주국가 체제 아래서민주적인 예배를 버리고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귀족적이고 화려한 형태의 의식으로 점차 전환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을 종교적 예배의 날과 시민의 날로 결정한 이후 일요일은 교회력에서 중요한 날이 되었고, 성탄절을 비롯한 여러 절기들이 교회에서 지켜졌다. 내적 신앙에 대한 외령적 숭앙 사상이 과감히 표현되면서 예배를 위해 웅장한 교회들이 건축되었다.
"이처럼 중세 카톨릭교회의 예배는 다양한 의식과 전통이 확립되었으며, 예배자들의 전례에서 성찬이 중심이 되었다."
1.3. 교회와 제단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으로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이것은 제2차 바티간 공의회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동시에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사회와 위계적인 조직체를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12사도와 바울 및 그 후계자들이 선교한 지방에 신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됨으로 시작되었다. 세례를 통해 이 공동체에 속한 신도들은 보편적인 사도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교회에서 전례의 집행 등의 봉사는 성직자, 주교, 사제, 부제에 의해 행해진다. 주교는 그리스도에 의해 선출된 12사도의 후계자이며, 사제와 부제는 주교를 돕는다. 전 세계의 교구는 로마의 주교인 교황 밑에 속해있으며, 카톨릭의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교회의 최고 권위자이다. 이것은 1917년 교회 법전에 의해 법제화되었다. 교회 제단은 성당의 중앙 안쪽에 놓이며, 미사를 거행하는 강단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당 중앙에, 6세기경부터는 안쪽ㄹ 벽에 붙여서, 최근에 건축되는 성당에는 다시 제단을 벽에서 떨어져 서로 마주보면서 미사를 올리도록 하였다. 제단 위에는 중앙에 십자가, 그 밑에는 성별된 빵을 넣는 성궤가 있고, 좌우에는 촛불을 한 쌍 또는 세 쌍으로 세워 두며, 앞에는 수를 놓은 천을 늘어뜨리고, 좌우로 걸치는 흰 천으로 제단을 덮는다."
1.4. 교회의 성례와 그 의미
교회의 성례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맺는 중요한 의식이다. 성례는 신약성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초대교회에서부터 발전해 왔다.
성례란 헬라어로 'sacramentum'또는 'Mysterion'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물리적인 요소를 통해 전달되는 신비한 의식을 의미한다. 성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세례와 성찬이 가장 핵심적인 성례로 인정되었다. 세례는 죄로부터의 정결과 새 생명을 상징하였고, 성찬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는 의식이었다. 이후 교회는 점차 성례의 범위를 확장하여 혼인, 견진, 고해, 성직 서품, 병자성사 등을 성례로 규정하게 되었다.
중세 카톨릭 교회는 이러한 7성례를 교회의 중심 교리로 발전시켰다. 7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여겨졌으며, 각 성례는 은혜의 통로로 간주되었다. 이를 통해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위계질서가 강화되었고, 교회의 권위가 더욱 공고해졌다.
특히 성찬은 미사 의식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화체설에 따르면 성찬 때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고 믿었다. 이는 성직자만이 성찬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는 세례와 성찬만을 성경적 성례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 7성례를 여전히 중심 교리로 고수하였다. 이처럼 성례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대표적인 신학적 갈등 지점이 되어왔다.
오늘날 성례에 대한 이해는 보다 포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성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신자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 은혜가 전달되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를 통해 성례는 기독교 신앙생활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5. 중세 7성례의 의미와 역사
7성례는 카톨릭 예배의식의 핵심적요소였다. 카톨릭에 따르면 주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예식들을 제정하셨다. 따라서 그들에게 성례는 약속을 이행하는 실천적 진리였다.
성례의 의미는 헬라어의 'Mysterion'은 과거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말씀의 선포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가리킨다. 말씀 안에서 선포된 이 비밀은 신인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실현되었고, 오늘날도 각 개인의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실현된다. 성취된 이 비밀 계시는 마지막 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것이다.
어거스틴은 성례를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를 교회가 물려받아 이것이 후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정의했다. 성례의 최후 목적은 구원을 이루는 것이므로 어떤 형태이든 성례의 방법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성례를 통해 그분의 존재와 가치 능력 질서와 법적 절차가 표현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중세 교회는 스스로를 삶의 모든 중요한 경우에 특별한 은례를 베푸는 성례기관으로 여기게 되었다. 성례는 성경에 그렇게 많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주의 백성이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실행하야 하는 의무이다. 초대교회에서 이 의식은 주님의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의 지체의식을 강화하는 도구였다.
그 후 성례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와 다이아니에 의해 11개와 12개롤 제시되었다. 중세 교회 롬바르드가 사역할 당시 교회에는 세례와 성찬을 포함하여 축귀나 주기도문 암송 등을 합하여 대략 10개가 있었다. 롬바르드는 '문장서'에서 완전수 7을 선정하였다. 즉 성찬, 세례, 견진성사, 종부성사, 고해성사, 혼례성사, 성직서품등이었다.
1215년 제 4차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7성례를 합법적으로 승인하였고, 아퀴나스와 보나벤투라, 교황 유게니우스 4세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후, 교회의 영적 권한을 보여주는 기적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이 전승은 1545년부터 1563년까지 트랜트 공의회에서 재진술 되었으며, 오늘까지 가톨릭교회의 중심교리로 받아져 왔다. 하지만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의 7성례 대신 세례와 성찬만을 성경적인 성례로 간주하였다.
1.6. 7성례의 구성과 실제적인 적용
7성례의 구성과 실제적인 적용은 다음과 같다.
중세 카톨릭교회의 예배는 말씀보다는 신비한 경험과 다양한 의식들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7성례는 카톨릭 예배의식의 핵심적 요소였다. 이에 따르면 주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예식들을 제정하셨다고 믿었다. 따라서 성례는 약속을 이행하는 실천적 진리였다.
구체적으로 7성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 세례성사는 영적 삶의 시작이자 모든 성례의 기초였다. 세례를 통해 은총이 주입되어 과거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 둘째, 견진례는 세례를 받은 자가 신앙을 견고히 하거나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 실시하는 성장의식으로 양육의 의미가 포함되었다. 셋째, 종부성사는 병자의 신체 부위에 성유를 발라 주는 의식으로, 영혼을 도와주거나 때로는 몸을 치료하는 역할을 했다. 넷째, 서품성사는 교회 직분에서 헌신이 가시적인 상징으로 거룩하게 되는 은혜를 공급하는 성례였다. 다섯째, 고해성사는 중세 교회에서 기독교인이 도덕적으로 범한 죄를 공적으로 회개하는 것이었다. 여섯째, 혼인성사는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그 뜻을 실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지막으로 성찬성사는 성찬집행을 통해 그리스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