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앤디워홀 캠벨수프 캔"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앤디 워홀과 대중문화
1.1. 60년대 미국사회와 미디어의 영향
1.2. 스타 이미지 만들기: 은폐와 드러내기
2. 앤디 워홀의 작품과 현대사회
2.1. 스타와 죽음에 대한 집착
2.2. 재난 시리즈: 미디어와 대중의 냉담함
3. 산업사회와 소비문화 반영
3.1. 캠벨 수프 시리즈: 대량생산과 소비
3.2. 팩토리에서의 작업 방식
3.3. 실크스크린 기법과 대량생산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앤디 워홀과 대중문화
1.1. 60년대 미국사회와 미디어의 영향
60년대 미국사회는 TV의 위력이 어느 때보다 증대하던 시기였다. 실례로 닉슨과 케네디의 TV 토론에서 열세를 보이던 케네디가 TV 토론에서의 우세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미디어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또한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먼로와 같은 대중스타들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미디어와 스타의 힘이 부각되었다. 즉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하나의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비춰진 시기였던 것이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TV를 중심으로 한 매스미디어가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대중들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유명인물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들의 행동에 동화되어 갔다. 이는 기계적이고 전형적인 삶에 대한 욕구불만을 스타라는 우상적인 존재를 빌어 분출시키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워홀은 자신의 삶을 마치 작품인 양 연출하며 스타로서의 성공을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1.2. 스타 이미지 만들기: 은폐와 드러내기
앤디 워홀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여 대중들에게 신비감을 고조시켰다. 워홀은 자신의 개인적인 내용들을 감추어 대중들에게 모호함을 주었는데, 이는 자신이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전략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의 출생년도부터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며, 성장배경 또한 가난하고 불우했다는 암시만을 던지며 신비감을 조성했다. 또한 수많은 인터뷰와 자서전을 통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워홀은 자신에 관한 정보를 감추는 것으로 대중들에게 신비감을 자아냈다.
한편, 워홀은 자신을 대중들 앞에 적절히 드러내기도 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워홀은 인터뷰, 강연, 파티 참석 등을 통해 자신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워홀은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 신비감을 유지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자신과 관계가 깊은 타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자신을 닮은 대역을 내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았다. 이처럼 워홀은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적절히 구사함으로써 자신을 미디어 속의 스타들과 같은 신화적인 이미지로 창출했다. 이를 통해 워홀...
참고 자료
고동연,『팝아트와 1960년대 미국사회』,눈빛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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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Art and artists - Andy Warhol, www.moma.org/collection/works/79809 (2018.12.14 접속)
「워홀과 친구들」.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펴냄. 1997
「앤디 워홀 - 거울을 가진 마술사의 신화」. 강홍구 지음. 도서출판 재원 펴냄.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