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간호사의 공적과 활동
1.1. 공적조서
공적조서에 따르면 ○○○ 간호사는 12년 3개월 동안 ○○특별시 어린이병원에서 근무하며 환자 병간호와 지역사회 간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해 왔다"이다.
○○○ 간호사는 환자 병간호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위해 '24시간 보호자 없는 병동'을 운영하며 복합중증장애인과 중환아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환자들을 자기 가족처럼 돌봐 보호자 만족도 설문조사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2017년 하반기 ○○시 업무성과 우수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더불어 최고 병동을 위한 서비스 수준 향상을 추진하고, 이른둥이(미숙아)를 위한 길라잡이, 천사들의 수중운동, 호흡기계 감염관리법 개선 활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역사회 방문간호 및 건강증진 사업, 정신간호사업, 재활사업 등 배려계층 환자 간호에도 헌신했으며, 중증 복합장애아동 간호, 결핵 병동 근무 등 사회적 지위, 인종, 성별, 국적, 정당 등에 차별 없이 간호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또한 직원 멘토 교육과 간호 실습생 지도 등을 통해 후배 간호사들의 성장을 돕고 간호사 본연의 역할을 실천했다.
지역사회 선행으로는 '이모와 함께하는 천사들의 여행', '장애우와 사랑 나눔 봉사' 등을 기획하여 지역 내 어려운 환우들을 돕는 데 힘썼다. 또한 ○○원, ○○의 마을, ○○재활원, 나이팅게일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역사회에 이바지했다.
마지막으로 33년간 징계나 품위손상 없이 청렴성과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였으며, 가족에게도 효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인해 ○○시에서는 ○○○ 간호사를 청백봉사상 수상 후보자로 추천하고 있다.
1.2. 코로나19 사태 때 간호사들의 활동
1.2.1. 응급실 활동
코로나19가 한참 활발하게 일어났을 때 응급실은 코로나19 환자들을 비롯해서 다른 질병으로 오는 환자들이 많아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코로나19는 기저질환자들에게 치명적인 병이었기 때문에 호흡곤란이나 흉통, 심한 고열을 느끼는 환자들이 많았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응급실의 상황은 바쁘게 돌아갔다. 이미 그 이전에도 코로나로 인하여 간호사들이 과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4차 대유행으로 인하여 환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자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번아웃을 호소하는 간호사들의 수가 늘어났다.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이강용 씨는 코로나와 힘겹게 싸우는 의료진들을 렌즈에 담았다. 코로나 의심 증상 환자들이 대폭 늘어나게 되면서 간호사들의 손이 쉴 틈이 없었다. 환자들에게 기관삽입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붙이고 약을 주고 손을 쓸 일이 많아졌다. 이렇다 보니 간호사들의 손에는 땀이 가득하다 못해 불어서 주름투성이가 되었다. 손이 젖어있다 보니 장갑을 벗고 다시 새로 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의료진들에게 호소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아졌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완전히 포화상태가 되었다. 이미 병동이 가득 찼는데도 계속 환자들이 밀려 들어오는 것이다. 특히 작년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백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람은 많은데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응급실은 늘 붐볐고 간호사들의 업무 강도는 그만큼 세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환자들이 자리가 나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다 보니 환자들이 의료진들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일도 많아졌다. 간호사들은 민원 상대까지 해야 하다 보니 더 지칠 수밖에 없었다.
1.2.2. 의료봉사
코로나19 사태 초기,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가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봉사 참여를 간호사들에게 격려했다. 간호사들은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의료지원에 나섰다. 가족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차마 말하지 못한 채 의료봉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간호사들은 청도 군청으로 가서 청도대남병원으로 배정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에 대구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청도대남병원의 정신병동에서 100명이 넘는 환자가 나오면서 그곳으로 보내졌다.
청도대남병원의 상황은 심각했지만, 정부와 군청이 서로 협조했고 국민 정신건강센터에서도 의료진들이 직접 파견되어 도움을 주었다. 간호사들은 정신과적 치료로 인해 불안이 있었지만, 기존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환자들과 소통을 시도하며 내과적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간호사들은 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입고 근무했는데, N95 마스크 착용으로 호흡이 힘들었고 장시간 근무하면서 피로가 더 쌓이고 두통이 발생했다. 또한 특수 장갑을 착용해 환자의 정맥을 잘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의료봉사를 다녀온 간호사들은 당시 좋지 않은 이유로 주목받았던 병원이었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