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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역사회복지의 역사 비교
1.1. 한국의 지역사회복지 역사
1.1.1. 근대 이전의 지역사회복지 활동
근대 이전의 지역사회복지 활동은 주로 개인 또는 마을 단위의 상부상조 활동 중심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두레, 계, 품앗이 등의 활동이 대표적이었다.
두레는 공동 노동에서부터 상호 원조의 기능이 강한 공동체 활동이었으며, 자급자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있어 공동체의 상호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계는 조합적 성격을 지닌 모임으로, 영리적 목적뿐만 아니라 친목 도모, 공익의 목적 등 다양한 목적성을 가지고 조직되었다. 품앗이 또한 노동의 협동적 성격이 강한 활동이었다.
향약의 경우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의 교육 등을 목적으로 지역의 지식인들이 자조적인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 지역사회복지 활동의 단초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지역사회복지 활동은 주로 개인 또는 마을 단위의 상부상조 중심이었으며, 국가에 의한 사회복지는 상대적으로 미약했다고 볼 수 있다.
1.1.2.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일제강점기 직전에는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반열방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보관이 만들어졌으며 1921년에는 태화여자관이 설립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제 치하의 당위성과 효과적인 사회사업제도를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인보관이 설립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동부 인보관과 북부, 마포, 성동, 영등포 등지에서 인보관이 세워졌다. 일제 강점기를 비롯해 근대화 시기에는 주로 외부의 영향 아래 지역사회복지 활동이 펼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통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지역사회복지활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우리나라 지역사회복지 역사를 통틀어 침체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해방이후에는 나라의 힘이 약했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을 겪으며 국가의 자체적인 회생능력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로 인해 해방 전후로도 외국의 구호물품과 일시적인 시혜목적으로 지역사회복지가 이뤄졌으며 외국으로부터 물자를 들여와 공급하는 형태가 활성화되었다. 와중에 1956년에는 이화사회관이라는 우리나라 최초 대학 인보관이 세워지기도 했지만 근대화 시기는 우리나라 지역사회복지에 있어 인보관의 영향을 받았고 주로 외국이나 민간에 의해 지역사회복지 활동이 펼쳐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1.1.3. 새마을 운동의 전개와 평가
새마을 운동의 전개와 평가는 다음과 같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부터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운동이다. 근면·자조·협동의 기본 정신과 실천을 범국민적·범국가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국가발전을 가속적으로 촉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전개되었다. 새마을 운동은 정부의 절대적 지원으로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단순한 농촌개발사업을 넘어 공장·도시·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지방장관회의를 통해 '농민·관계기관·지도자 간의 협조를 전제로 한 농촌 자주 노력의 진작 방안을 연구하라'는 지시와 함께 처음으로 '새마을'이라는 명칭을 언급하면서 출범하였다. 이후 1970년 10월 '새마을가꾸기사업'이 시행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새마을 운동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1970년대에는 생활환경 개선, 소득증대, 의식개혁의 3대 역점사업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1970년부터 1973년까지는 마을안길 확장, 농촌주택 개선, 공동시설물 설치 등 생활환경 사업이 중점적으로 시행되었다. 1973년부터 1976년까지는 농지개량, 소하천 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