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최근 북한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북한의 대남도발 양상
2.1. 6·25전쟁 이후 북한의 대남도발
2.2. 195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2.3. 196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2.4. 197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2.5. 198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2.6. 199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2.7. 200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3. 북핵실험 현황
4. 북한 지도자의 행방
4.1.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적불명
4.2.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활동 재개
4.3. 철원지역 한국 측 GP에 대한 북한의 총격 사건
5. 북한 자원 활용을 통한 경제발전 가능성
5.1. 북한의 광물자원 활용
5.2. 북한의 인적자원 활용
5.3. 시장 확대
6. 통일의 기대 효과
7.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과거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따라서 이를 인식한 북한은 2009년에 들어서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을 미래의 권력 후계자로 내정하게 된다. 1년이 지난 후,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직함을 부여하며, 당 대표자회에서 권력 서열 2인자로 공식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었다.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은 지속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사태, 목함지뢰 사건을 포함하여 멈추지 않는 도발을 감행하여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내부 단속을 굳건히 하기 위해 국경선을 강화하여 북한을 탈출하고자 하는 탈북민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이렇게 세계의 경제를 어지럽히는 김정은 체제에서 최근 미국 CNN의 보도를 통해 김정은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며, 세계를 다른 양상의 혼란으로 몰아넣으며 세계를 다시 긴장시키고 있다. 본 글에서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잠행에 관련하여 전개 과정을 통해 조사보고서를 작성해보고자 한다."이다.
2. 북한의 대남도발 양상
2.1. 6·25전쟁 이후 북한의 대남도발
6·25전쟁 이후 북한의 대남도발은 끊이지 않았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북한의 대남 침투와 도발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6·25전쟁 와중에도 끊임없이 남한 내 침투한 남로당원과 지방 공비들을 이용해 후방 교란을 시도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경남 지역에 투입되었던 북한군 제 4·6·7·9·10사단의 퇴로가 차단되자 이들 패잔병 1만여 명은 지리산 일대에 활동 근거지를 구축해 후방 지역 교란에 나섰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통해 6·25전쟁은 휴전 상태에 돌입했지만, 북한의 무분별한 도발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1958년 2월 16일 부산 수영비행장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민국 항공사(KNA) 소속 여객기 '청량호'를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어 4월 10일에는 공군 C-46 수송기 납북 시도도 있었다.
이처럼 북한은 6·25전쟁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남한을 겨냥한 도발을 지속했다. 이는 북한이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2. 195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195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은 6·25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선전포고조차 없이 소련제 전차들을 앞세워 38선을 넘어와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서울이 점령당하기 전까지 북측의 남침이 전쟁이 아닌 도발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북한은 크고 작은 도발 사건을 벌여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6·25 전쟁 와중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 내 침투한 남로당원과 지방 공비들을 이용해 후방 교란을 시도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경남 지역에 투입되었던 북한군 제 4·6·7·9·10사단의 퇴로가 차단되자 이들 패잔병 1만여 명은 지리산 일대에 활동 근거지를 구축해 후방 지역 교란에 나섰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통해 마침내 6·25 전쟁은 휴전 상태에 돌입했다. 하지만 북한의 무분별한 도발은 끝나지 않았다. 1958년 2월 16일에는 청랑호 납북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부산 수영비행장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민국 항공사(KNA) 소속 여객기가 북한 무장간첩에 의해 납치된 사건이다. 북한은 민간인 납치에 대한 세계 여론이 악화되자 승객 26명을 송환했지만 조종사와 승무원 등 8명은 범인으로 조작해 억류했다.
이처럼 북한은 1950년대부터 남한을 향한 무력 도발과 간첩 활동, 민간인 납치 등 끊임없는 대남 공격을 이어갔다. 이는 북한이 여전히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3. 1960년대 북한의 대남도발
1960년대 북한은 6·25전쟁 이후에도 끊임없이 남한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였다. 1966년 이후 북한은 대남적화 전략에 따라 다수의 무장공비를 남파하기 시작했다. 1967년에는 동해상에서 우리 해군 함정 '당포함'을 격침시켰으며 우리 어선에 대한 강제 납북도 빈번하게 자행했다.
특히 1968년 1월 21일에 발생한 '1·21 사태'는 대표적인 북한의 대남 도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무장병력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서울 깊숙이 침투하다 적발되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 군의 복장을 입고 침투했으나 경찰의 검문에 걸려 주변에 있던 시내버스에 수류탄을 던져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상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30일부터는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무장공비는 약 2개월 동안 게릴라전을 펼치며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우리 군은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1960년대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에 대한 무장공비 침투와 해상 도발 등 다양한 형태의 대남도발을 자행하여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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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세습3대통치북한의정권, 전지명 (삼영사, 2019.12), 북한 핵개발은 남한 보수정권에 의해 완성되었다!, 김대호 (도화, 2016.04),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 진단, 이민룡 (퍼플, 2015.03)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3/2020050390059.html(TV조선 기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566646&code=61111111&cp=nv(국민일보 기사)
북한 광물자원 개발·가공 분야의 투자잠재력 (정우진 외, 에너지경제연구원, 2015)
남북한 경제통합의 효과 (성한경,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