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조선시대의 공예품
1.1. 금속공예
1.1.1. 종교적 금속공예품
조선시대의 금속공예품 중 종교적인 것으로는 대표적으로 사찰에서 범음구로 사용되는 범종과 금고·운판을 들 수 있다.
범종은 중국 범종의 형태를 받아들여 제작되었는데, 조선 중기의 범종은 통일신라와 고려의 범종의 기본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일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범종은 대중을 모으거나, 때를 알리기 위하여 울리는 역할을 하였다.
금고와 운판은 각각 쇠북과 구름 모양을 본뜬 악기로, 사찰에서 범종과 더불어 사용되었다. 이들 악기는 불교 의식을 알리거나, 불교 행사를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종교적 금속공예품은 당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종교인 불교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들 공예품은 불교 의식과 행사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대표적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1.1.2. 장신구류
조선시대의 금속공예 장신구는 귀걸이, 비녀, 반지, 노리개, 팔찌, 장도, 침통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이러한 금속공예 장신구는 금제품이 가장 대표적이었으며, 주조, 단조, 판금, 상감, 누금 등 다양한 공예기법을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특히 신라 금제품은 국가의 대표적인 문물로 여겨져 왔다. 출토유물에서 귀걸이, 관식, 요패, 팔찌 등 다양한 금제 장신구가 발견되고 있으며, 이는 신라가 금속공예 기술을 매우 발달시켰음을 보여준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금제 장신구가 발견되고 있으나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조선시대 금속공예 장신구는 귀족층뿐만 아니라 평민들에게서도 나타났다. 금제품 외에도 은제, 동제 등 다양한 재질의 장신구가 제작되었으며,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형태가 특징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사회계층 간 지위와 품위를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3. 생활용품
조선시대 금속공예의 생활용품에는 동경, 시저, 촛대, 향합, 식기류 등이 있었다. 동경은 거울로 사용되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반원형의 동경이 유행했다. 시저는 가위의 일종으로 금속제로 만들어졌으며, 신분에 따라 장식을 달리하였다. 촛대는 불교 의식이나 궁중, 사대부가에서 사용되었고, 향합은 향을 피우는데 사용되었다. 식기류로는 숟가락, 젓가락, 국자 등이 있었으며, 신분에 따라 재질과 장식을 달리하였다. 이러한 생활용품은 조선 왕실과 사대부가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장식적 요소와 함께 실용성도 겸비하였다.
1.2. 목칠공예
1.2.1. 목공예
조선시대의 목공예는 조선적인 성격과 미적감각, 그리고 미의식에서 오는 근본적 이념이 대담하고 거리낌 없이 나타나 있다. 당시에 사용된 나무로는 오동나무, 느티나무(귀목), 대추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등이 있었다. 목공품류로는 사방탁자, 문갑, 필통, 식기 등 다양한 물품들이 제작되었다. 사방탁자는 네 면에 걸쳐 있는 탁자로, 문갑은 문서나 문구 따위를 보관하는데 쓰였던 가구이며, 필통은 필묵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목공예는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실용적인 용품들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목공예품들은 기능과 함께 조선만의 독특한 미적 감성이 담겨있어 조선인들의 미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2.2. 칠공예
칠공예는 다른 말로 나전칠기라고도 하며, 고려시대 때부터 장식되어서 조선시대에 들어와 계속 발전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칠기는 고려시대 칠기와 다르게 금속선을 나전과 더불어 쓰지 않고, 후기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복과 수명을 연장케 하며 벽사적 뜻이 다분히 담아 사용하여 회화적인 문양으로 그 경향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나전칠기는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형태로 오려 기물의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칠공예의 장식기법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시대 칠기와는 달리 금속선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조개껍데기만으로 표현하여 보다 순수한 한국적 특징을 살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후기로 갈수록 벽사적인 의미가 강조되어 화려한 장식미보다는 회화적인 문양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칠공예는 고려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양상을 보이며 발전하였는데, 금속선을 배제하고 오로지 나전을 이용한 순수한 한국적 특징을 보이다가 점차 회화적인 문양으로 변천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변화와도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3. 도자공예
1.3.1. 백자
조선시대 백자는 16세기 전반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시기의 백자는 조선 중기 백자, 청화백자의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기였다. 특히 16세기 후반은 철화백자의 등장과 청화백자의 제작, 분청자의 소멸과 조질백자의 제작이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18세기 전반은 정치·사회·문화의 안정과 발전에 따라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는 백자 달항아리를 비롯하여 굽이 높은 제기, 각과 면을 깍은 병·호·접시 등이 등장하며 조선 후기 백자의 시작이 이루어졌다.
백자는 원료인 백토와 유약의 정선도가 뛰어나 정교하고 깨끗한 질감을 보여주었다. 또한 다양한 기형과 문양이 개발되어 조선 후기 백자의 전성기를 열었다. 특히 달항아리는 가장 유명한 조선 후기 백자로, 유려한 곡선미와 수려한 문양으로 세계적인 명품으로 손꼽힌다.
이처럼 조선시대 백자는 시기별로 그 특징이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우수한 품질과 아름다운 미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당시 도자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조선 특유의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3.2. 청화백자
청화백자는 16세기 후반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백자의 일종이다. 청화백자는 백자의 표면에 청색의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문양을 그려 넣은 도자기로, 이전 시기의 백자에 비해 문양이 정교해지고 다채로워졌다는 특징이 있다.
청화백자는 그 제작 기술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여 당시 조선의 백자 문화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도자기 유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청화백자에는 과거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통적인 문양들이 새롭게 재해석되어 표현되었는데, 주요 문양으로는 용, 학, 모란, 연화 등의 길상문양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길상문양들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이상적인 삶과 행복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청화백자는 주로 고급 도자기로 취급되었기에 주로 양반 사대부 계층이나 왕실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혼례나 국가의 중요한 의식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청화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