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전쟁 상황에서의 여성 인권 -일본군‘위안부’를 중심으로-학술조사보고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수자 현황
2.1. 군위안부에 대한 호칭
2.2. 군위안부 피해자 현황
2.3. 소수자의 정의
2.4. 소수자 특징에 따른 유형화
2.5. 조직화 여부
3.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수자 운동
3.1. 소수자 운동 (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관련단체들)
3.2. 분석틀
4. COVID-19로 인한 불평등 문제
4.1. COVID-19의 경제적 영향
4.2. COVID-19로 인한 불평등의 대응책
5.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유엔의 대응
5.1.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UN의 대응과정
5.2.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소송과정 및 판결
6. 결론
7.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우리나라는 뼈아픈 일제 식민 시대를 겪었고 그 아픔과 고통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문제이다. 일본은 전쟁을 수행한다는 명목 하에 많은 수의 조선 여성들을 군위안소로 강제 또는 유인의 방법을 통해 징집하였다. 식민지나 점령지로 징집된 여성들은 군인들의 성욕해소의 도구로 이용되었고 이외에도 군의 요구에 따라 총탄을 나르거나 부상병의 간호보조, 군대에서의 온갖 잡다한 일을 맡아 하며 전쟁의 한복판에서 여성의 가냘픈 몸으로 전쟁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받아내었다. 이러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 피해 후유증이나 사회적 편견으로 사회적 소수자로 지낼 수밖에 없었으며 90년대가 되어서야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피해자들이 생겨나면서 그들에 대한 지원과 사회적 인권운동이 그제야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2.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수자 현황
2.1. 군위안부에 대한 호칭
군위안부에 대한 호칭은 그 용어 사용에 있어서 많은 혼란이 있었다. 군위안부제도는 일본정부와 군이 비밀리에 시행했으므로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군위안부에 관한 사실은 음성적으로만 이야기되어 왔다. 따라서 '군위안부'라는 용어를 둘러싸고도 적지 않은 혼란이 있었다.
1980년대 말부터 새롭게 군위안부 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는 정신대라는 명칭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종군위안부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는데 그 용어에서 종(從)이 자발적 참여를 뜻하고 있다고 하여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이하 '정대협'으로 약칭) 에서는 강제종군위안부로 쓸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1992년 보고서를 내면서 '군대위안부' 라는 개념을 사용했으며, 유엔 등 국제 활동의 장에서는 '성노예'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 당시 일본군 문서에 '군위안소' 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당시에 간행되었던 에 "군위안부 급모(急募) 라는 광고가 실려 있는 점에 주목하여 '군위안부'라는 용어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에 '정대협' 도 동의를 했고 피해자 할머니 증언집에 그렇게 쓰이면서 차츰 이 용어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2.2. 군위안부 피해자 현황
군위안부 피해자 현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안부 피해자의 연령과 생존 현황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이 매우 높아 생존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3년 현재 생존자는 56명에 불과하며, 매년 수명이 단축되어 피해자들의 인권과 삶의 기회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둘째,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 성적 학대와 폭력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며, 평생 그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귀국 후에도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
셋째, 피해자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이다. 피해자들은 귀국 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 조사 결과 피해자들의 주된 직업은 파출부, 노점상, 식당 및 술집 종사자 등 저소득 직종이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어려운 생활을 이어왔다.
넷째,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와 차별이다. 피해자들은 전쟁 중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사회의 유교적 가치관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받았다. 이들은 평생 자신들의 경험을 숨기고 살아왔으며, 199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전쟁 중 겪은 성폭력과 폭력, 귀국 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와 소수자로서의 고통을 겪었다. 이들은 지금도 생존자들의 높은 평균 연령과 전반적인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2.3. 소수자의 정의
군위안부 피해자들은 더글라스의 주장에 대입해볼 수 있다. 더글라스는 인간사회질서의 근본에는 순수와 위험으로 대비되는 상징체계가 존재한다고 보며 질서가 부여된 순수라는 상징체계와 그 외부에 존재하는 오염된 대상인 위험이라는 상징체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돈되고 절제된 '우리'와 일탈적이고 파괴적인 '타자'를 표상하며 여기서 '타자'의 개념이 소수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전쟁의 강제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뿌리 깊은 정조관념으로 인해 우리 사회 내에서 단지 몸이 더럽혀진 여성으로 취급되고 본인들 또한 순결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빠지는 등 그 당시에 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오염된 위험한 타자로 상정하고 그들을 소수자로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2.4. 소수자 특징에 따른 유형화
소수자 특징에 따른 유형화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소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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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2018,07,05), 일본 열도 뒤집은 관부재판 실화 '허스토리'
인사이트(2018,06,30), '위안부' 할머니 아픔 가슴에 콕콕 박혀 눈물샘 자극하는 '허스토리' 명대사 ...
강명윤, 근로소득 격차 좁혀온 10년… 코로나19로 다시 벌어져, 조선미디어, 2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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