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간호 해외 파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간호사 해외 이주의 역사와 현황
1.1. 독일 간호사 이주의 사회적 배경
1.2. 간호 인력의 해외 파견 역사의 시작
1.3. 독일 간호사의 당시 사회적 상황
1.4. 독일 파견 간호인력의 성공사례
1.4.1. 간호사 이민자 개인병원 운영 사례
1.4.2. 위안부 할머니 운동 활동 사례
1.4.3. 파독 간호사 여성회 활동 사례
2. 한국 간호사의 해외 근무 결심 요인과 영향
2.1. 한국 간호사 근무환경 실태
2.2. 한국 간호사의 해외 취업 현황
2.3. 한국 간호사의 해외근무 결심 요인
2.4. 한국 간호사의 해외 이직 현상이 한국 간호에 미칠 영향
3. 한국 간호의 성장과 발전
3.1. 한국 간호의 성장기 (1961년~1979년)
3.1.1. 의료법 개정에 따른 간호의 변화
3.1.2. 간호교육제도의 변화과정
3.1.3. 대한간호협회의 활동
3.1.4. 간호사의 해외진출과 그 영향
3.2. 한국 간호의 발전기 (1980년~1990년)
3.2.1. 의료법 개정에 따른 간호의 변화
3.2.2. 간호영역의 확대 및 발전
3.2.3. 간호교육제도의 발전
3.2.4. 대한간호협회 조직의 발전 및 활동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간호사 해외 이주의 역사와 현황
1.1. 독일 간호사 이주의 사회적 배경
1955년에 이미 외국인 고용을 시작할 정도였던 독일의 노동력 부족 문제는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며 더욱 심각해졌다. 독일 병원은 지금도 만성적인 간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병동 폐쇄를 고려해야 할 만큼의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기 호황에 힘입어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서독은 사회복지국가로서 복지정책이 확장 일로에 있었다. 그만큼 병원과 요양시설, 그것을 담당할 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러한 독일 노동시장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한인 간호사들이 독일로 가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발생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발전해가고 있는 국가의 남아도는 인구와 실업률이 있다. 당시 한국, 특히 남한은 전쟁 이후의 경제사회적 상황 속에서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산업화가 추진되고 있었다. 산업화를 위해서는 자금과 기술이 필요했고 산업화로 인해 심화될 실업율의 극복과 많은 인구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해외인력송출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한국은 해외로 인구를 분산시키고 그로써 실업률을 낮추는 것이 당시 최대의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이는 간호인력, 특히 학생으로 파견하는 일은 독일의 필요와 당시 많았던 인구의 해외방출이었고 실업의 해결이 최대의 목적이었던 한국의 명분을 만족시키는 것이었고 그러면서 외화가 들어오는 것은 금상첨화였다.
1.2. 간호 인력의 해외 파견 역사의 시작
한국의 간호사는, 매우 개인적인 몇 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1966년 이수길 박사의 중재에 의한 것이 최초의 간호 인력의 해외 파견 역사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미 1959년에 한국여성들의 독일행이 진행되었는데, 최초 몇 년 동안 그들은 간호사가 아닌 간호학생으로 갔고 교육을 받은 후 간호사가 되었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한국 여성 간호 인력의 독일행은 1973년에 독일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을 중단시킨(Anwerbenstopp) 이후 약 3년간 더 지속되었다. 1966년부터 1976년 5월의 마지막 팀까지 약 10,032명이었다. 그러나 1966년 이전에 이미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는 많은 간호학생으로 간 여성들이 있었고 경로도 매우 다양했기 때문에 전체 간호 인력의 수는 정확하지 않다.
1.3. 독일 간호사의 당시 사회적 상황
독일 간호사들은 비록 그 중 상당수가 현재 해외 한인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는 노동력만을 판매하기 위하여 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독일 측에 의해 '외국인 근로자'나 독일 내 '외국구성원'등이 아닌 손님노동자(Gastarbeiter)로 불리었다. 이는 독일 사회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왔다가 거의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는 손님의 지위로 그 체류의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노동력은 사되 사람은 받지 않겠다는 외국인 고용정책의 원칙이 반영되어 있으며 또 이주노동자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도도 들어있었다.
1.4. 독일 파견 간호인력의 성공사례
1.4.1. 간호사 이민자 개인병원 운영 사례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이민자 동양의학 및 이비인후과 개인병원을 개업하여 운영 중인 간호사는 경북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대학병원에서 6개월 간 근무한 뒤 1966년 독일로 파견되었다. 간호사로 취업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건너와 2년 6개월 동안 베를린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간호사는 재독한국여성모임 창립 멤버로 활동하고 2003년 세계한국여성네트워크(KOWIN) 독일지역회를 창립하며 회원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유럽지부 베를린 분회장, 재독 한인간호사연합회 이사, 베를린 한인회 이사 및 감사, 한민족 유럽연대 회원, 경북대학교 유럽 동창이사 등을 역임하며 한국 간호계와 유럽 한인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소명의식을 갖지 않으면 참 힘들지요. 한국의 모든 간호사들이 맡은 일에 기쁨을 갖고 최선을 다하며 즐거운 삶을 영위했으면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변화를 시도하고 도전하며, 현재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며 간호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1.4.2. 위안부 할머니 운동 활동 사례
한정로 간호사는 1967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이다. 한정로 간호사는 독일에서 오랜 기간 동안 간호사로 일하다가 사회운동에 전념해왔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16년 동안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권익 옹호에 전념해 왔다는 점에서 높은 사명감과 열정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이러한 활동은 한국 간호사들 사이에서 위안부 운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간호사 집단 내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4.3. 파독 간호사 여성회 활동 사례
파독 간호사 여성회 활동 사례는 다음과 같다.
함부르크의 파독 간호사회인 '백의회'(현 함부르크 한인 여성회)의 창립멤버이자 회장을 맡았던 이영남 간호사는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그린 연극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를 무대에 올리며 파독 간호사들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였다. 또한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독일지부 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예술인상을 수상하는 등 파독 간호사들의 활동과 업적을 홍보하고 기리는 데 힘써왔다.
이처럼 파독 간호사 여성회는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기록하고 기념하며, 이들의 역사와 업적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특히 각종 단체와 행사에 참여하며 파독 간호사들의 삶과 경험을 전하고, 이들의 자긍심과 전문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파독 간호사들의 경험과 기여가 한국 간호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한국 간호사의 해외 근무 결심 요인과 영향
2.1. 한국 간호사 근무환경 실태
한국 간호사의 근무환경 실태는 열악한 수준이다. 간호사들은 장시간 근무, 불규칙한 교대근무, 잦은 야간근무 등으로 인해 큰 부담을 겪고 있다. 특히 교대근무 형태는 3교대가 89.4%로 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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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3/2013030301412.html
연합뉴스 2012.08.27 11:54 --파독 간호사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77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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