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양학신사의 주장"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과 일본의 개항과 근대화
1.1. 조선의 개항과 반발
1.2. 일본의 개항과 배외운동
1.3. 조선과 일본 양국의 개화과정 비교
2. 조선과 일본의 개혁
2.1. 조선의 변화
2.1.1. 대원군의 개혁
2.1.2. 대원군 이후 조선의 개혁
2.2. 일본의 변화 - 메이지유신
2.2.1. 일본형 국민국가
2.2.2. 일본형 국가통합장치
2.2.3. 서구 근대 정치이념과 제도의 일본식 변모
3. 복택유길과 유길준의 근대국가관
3.1. 복택유길의 근대국가관
3.1.1. 구체제에 대한 비판
3.1.2. 근대국가관
3.2. 유길준의 근대국가관
3.2.1. 유교적 전제정치에 대한 비판
3.2.2. 근대국가관
4. 일본 역사의 발전과 시사점
4.1. 일본 역사 발전 단계
4.2. 메이지 유신시대의 의의
4.3. 일본 역사 왜곡과 교훈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조선과 일본의 개항과 근대화
1.1. 조선의 개항과 반발
1873(고종10)년에 대원군(大院君)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고종과 명성황후의 친정이 시작되면서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변화가 불가피했다. 통상을 요구하며 조선에 찾아온 열강들을 洋擾를 통해 물리친 이후에도, 국제정세의 조류를 감지한 고종과 그의 측근들은 개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었다. 또한, 열강들과의 등거리외교를 통해 서로 견제를 유도하려는 고종의 노력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1875년 일본은 중무장한 군함 운요호를 강화도 초지진에 접근시켜 조선측의 발포를 유도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내 반한감정을 고취하며 대규모 파병준비를 하면서 수교회담을 요구하였다. 조선정부는 박규수(朴珪壽)·신헌(申憲)등의 의견을 들어 1876년 12개조에 달하는 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병자수호조약(丙子修護條約) 혹은 강화도조약이라고 한다. 이 조약은 일본의 영사재판권 인정, 港稅면제 등을 규정한 불평등조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조선측은 기존의 교린정책을 약간 수정한 정도로 파악했기 때문에 무난히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미국(1882), 영국·독일(1883), 이탈리아·러시아(1884), 프랑스·오스트리아(1886)등과 이어서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조선의 개항은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무력에 의한 것이지만 이미 이전시기부터 개항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었다. 정조때부터 시작된 북학(北學)이 대외통상론(對外通商論)으로 계승되며, 박규수·오경석(吳慶錫)·유대치(劉大致)·이유원(李裕元) 등에 의해 더욱 발전하며 통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壬亂이후 발전한 상업자본의 영향으로 개항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개항 이후 통상에 의해 조선의 물자가 유출되고, 산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외세에 대한 반감이 커졌고, 대원군과 함께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논리로 무장한 유생층의 반발은 커졌다. 이들은 종전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도덕중심의 유교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군대와 산업문화를 앞세운 서양과 일본의 침투가 비도덕적이고 야만적으로 보였으며, 그들과의 교섭은 장차 조선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파멸로 이끌 것으로 예견하였다. 이항로(李恒老), 기정진(奇正鎭)등은 병인양요 이후에 척화책을 주장했으며, 최익현(崔益鉉)은 강화도조약 당시 도끼를 들고 대궐밖에서 농성하는 등 반발이 심했다. 한동안 정부의 탄압으로 잠잠했지만, 조선책략(朝鮮策略)이 조야에 유포되자 다시 한번 비등했다. 위정척사사상은 정서적으로 매우 애국적이고, 당시 서양과 일본의 근대문명이 지닌 침략성과 비도덕성을 정확하게 예견하였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만 하지만, 당시 시대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 것이다.
1.2. 일본의 개항과 배외운동
1840년대에 청이 영국에 패배한 소식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에도(江戶)막부의 쇄국정책{이 약해지고 있었다. 1853년 6월, 미국의 동인도 함대 사령관 M.C 페리 제독이 미국대통령의 개국요구친서를 가지고 일본에 왔으며, 이듬해 1월에는 함대의 위력을 배경으로 막부에 개국과 통상을 요구했다. 막부는 천황조정, 다이묘등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당시 여론은 개국반대의 양이론(攘夷論)이 우세하였으나, 페리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막부는 1853년 3월 미일화친조약을 맺어 시모다(下田)·하코다테의 개항과 미국영사관의 일본설치를 인정했다.
1856년에 총영사로 부임한 해리스는 중국정세를 막부에 설명하여, 1858년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은 일본최초의 불평등조약으로 치외법권인정, 최혜국대우인정, 관세자주권의 표기, 4개항(도쿄, 요코하마, 고베 등)의 추가개방이 주요내용이다. 이어서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과도 비슷한 내용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개항은 했지만 위 조약들은 막부가 칙허없이 독단적으로 체결한 것으로 반막부세력이 등장하는 원인이 되었다.
1859년 본격적인 서양과의 통상이 개시되어, 생사나 차·금등이 수출되고 모직물·면직물·함선·무기등이 수입되었다. 수출품의 격증과 대량의 금의 유출로 인한 경제의 혼란은 하급무사와 민중의 생활을 압박하였다. 일부 다이묘와 무사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천황의 권위를 회복하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론을 주장하였다. 막부의 타이로(大老)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는 반대파를 처벌하여 막부독재를 강화하였으나, 반대파에 살해되고, 막부는 천황 조정과 결합하여 막부정치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 1863년 이후 영국등의 함대와 전투를 통해 양이가 불가능함을 알게 된 사쓰마번과 초슈번(長州藩)에서는 하급무사들이 실권을 잡고 영국과 제휴하여 근대적인 군비를 갖추어, 막부를 타도한 후 천황중심의 정부를 세우려 하였다. 막부는 프랑스의 원조로 군사개혁을 추진하고 초슈정벌을 꾀하였으나, 초슈번과 동맹을 맺은 사쓰마번은 막부의 출발명령에 블응하였고, 물가 상승으로 전국에서 약탈행위와 소요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초슈정벌에 실패한 막부는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개항은 외국함대의 위력과 압박에 의해 강제된 것이었지만, 이미 이전부터 쇄국 정책의 한계를 느끼고 개국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세력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막부정권에 대한 배외적 반대세력의 지원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의 개항은 일본 내부 세력들의 자발적 개혁 의지와 서구 열강의 압력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1.3. 조선과 일본 양국의 개화과정 비교
조선과 일본은 19세기 후반 서구열강의 압박 속에서 근대화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조선의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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