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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생초 편지
1.1. 감옥에서 만난 야생초
작가는 감옥에서 우연히 교도소 벽에 도배된 '가톨릭신문'의 천주교 순교사를 읽고 종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만성 기관지염과 요통, 치통 등의 건강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요법을 실천하게 되었다. 운동시간에 나가서 운동장에 난 풀들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몸을 치유하기 위해 그 풀들을 직접 먹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작가는 풀들을 자신의 몸의 일부로 인식하게 되면서, 점점 생태주의자로 변모하게 되었다. 작가는 감옥 안에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 종에 가까운 풀들을 심고 가꾸었다. 뿐만 아니라 하루 하루 식물 일지를 쓰고 직접 그림까지 그렸다. 이처럼 작가에게 야생초는 '옥중 동지'와 같은 존재였으며, 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1.2. 작가 황대권의 삶
황대권은 195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01년 6월 8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한 조직극이었다고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널리 밝혀졌지만, 그때는 이미 그가 서른이던 1985년부터 1998년 마흔네 살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 동안의 황금 같은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후였다. 우연히 교도소 벽에 도배된 '가톨릭신문'의 천주교 순교사를 읽고 종교 생활을 시작했다. 감옥에서는 자기 글을 써서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편지 형식으로 기록하여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야생초 편지'의 시초가 되었다. 1998년 출소 후 전남 영광에서 생태공동체를 가꾸는 농사꾼이 된 황대권은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 중에 청년시절부터의 오랜 숙원이었던 생태공동체의 실현에 온 열정을 쏟으며, 2001년부터 현재까지 생태공동체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다.
1.3. 야생초에 담긴 의미
야생초에 담긴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작가 황대권은 감옥 생활 동안 야생초를 재배하면서 이들이 지닌 의미를 깨달아 갔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잡초"라 일컫는 풀들을 "야생초"라 부르며, 이들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작가에게 야생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는 동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작가는 야생초가 "크건, 작건, 못생겼건, 잘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을 피워내"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야생초는 자신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간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더불어 작가는 야생초가 자연스럽게 자라나며 인간의 간섭 없이도 생명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삶에도 적용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