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치기공 주모형 설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브루넬레스키의 돔
1.1.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성당
1.2. 산조반니의 금 세공사
1.3. 보물 사냥꾼
1.4. 마이동풍
1.5. 맞수 로렌초
1.6. 성도 이름도 없는 사람들
1.7. 듣도 보도 못한 기계
1.8. 사암 사슬
1.9. 뚱보 목수 이야기
1.10. 오등분 첨두
1.11. 벽돌과 모르타르
1.12. 아르노강의 괴물
1.13. 루카 대참사
1.14. 대성당 헌당식
1.15. 첨탑
1.16.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1.17. 희열의 밀실
2. Carroll과 Bloom의 교수-학습이론과 모형
2.1. 서론
2.2. Carroll의 학교학습 모형
2.2.1. Carroll의 학교학습모형의 개념
2.2.2. Carroll의 학교학습모형의 배경
2.2.3. Carroll의 학교학습모형의 기본가정
2.2.4. 학교학습 모형의 구성변인
2.2.5. 변인과 학습의 정도의 관계
2.2.6. Carroll의 학교학습모형의 특징
2.2.7. Carroll의 학교학습 모형의 시사점
2.2.8. Carroll의 학교학습 모형의 한계점
2.3. Bloom의 완전학습 모형
2.3.1. Bloom의 완전학습모형의 배경
2.3.2. 완전학습 관련 주요변인
2.3.3. 완전학습의 교수절차
2.3.4. Bloom의 완전학습모형의 특징
2.3.5. Bloom의 완전학습모형의 시사점
2.4. 참고문헌
3. 민속놀이 수업
3.1. 수업 개요
3.2. 수업의 설계
3.3. 수업 배경
3.3.1. 민속놀이 수업의 필요성
3.3.2. 운동과 건강+역사+미술
3.4. 교수·학습 과정안
3.5. 교수·학습 자료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브루넬레스키의 돔
1.1.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성당
1418년 8월 19일, 벌써 한 세기가 넘도록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신축 공사가 벌어지던 피렌체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흥청거리는 도시였다. 피렌체의 주 수입원은 모직 산업으로 피렌체에서 만든 모직은 누구나 탐을 냈고, 유럽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다. 이런 경제에 힘입어 당시 피렌체에서는 건축이 호황이었다. 고대 로마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일직이 유례가 없던 거대한 규모였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건축물은 노후한 건물 산타레파라타 교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짓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피렌체 성당)이었다. 피렌체 성당은 기독교권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 크기가 거대한 만큼 돔의 크기도 어마어마했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거대한 크기의 돔을 지어본 사람이 없었다. 공모전을 열었고 네리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네리가 설계한 돔은 판테온을 비롯하여 과거에 지어진 돔들과는 달리 첨두형이었다. 하지만 이 복잡한 구조는 오십 년 뒤 돔 공사에 착수한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해결책을 위한 공모전을 열었고 이 공모전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독창적이고 과감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1.2. 산조반니의 금 세공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1418년 피렌체의 신조반니 구역, 대성당 바로 서쪽에 자리한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세르 브루넬레스코 디 리포 라피는 견문이 풍부한 공증인으로 아들에게 상당한 재산을 물려주었다. 또한, 세르 블루넬레스코는 그의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줄 생각이었지만 필리포는 공직에는 관심이 없었고 기계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세르 브루넬레스코는 아들을 금 세공사의 공방에 들여보냈다.
필라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네초 고촐리와 같은 화가와 도나텔로, 델라 로비아와 같은 조각가가 그랬던 것처럼 금 세공사의 공방에서 실력을 닦았다. 필라포는 금세공 말고도 운동의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자명종을 발명하였다.
1400년 여름 발생한 흑사병으로 피렌체 인구 중 일만 이천 명이 사망하였다. 이듬해 피렌체 직물상 조합은 하늘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산조반니 세례당의 청동 문을 새를 달기로 했다. 이때 공모전이 진행되었는데 이 공모전은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최종 공모전에서 필라포와 로렌초가 당선되었다.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기에 둘이서 공동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필라포는 이를 거부했고 그 사업을 경쟁자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조각에서 손을 떼고 청동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 허물어져 가는 유적을 연구하며 생계는 시계 제작과 보석 가공으로 꾸려갔다. 한편 로렌초는 이십 년 동안 청동문제작에 매달려 ㅍ렌체 미술이 낳은 최대 걸작 중 하나를 탄생시켰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과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났다. 그는 비트루비우스가 이야기하는 건축가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는 여러 가지 전문분야로 세분화 되었지만, 건축가는 종합적 예술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예술적 감각과 이과적 두뇌를 모두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1.3. 보물 사냥꾼
카피톨리움의 제우스 신전, 포룸, 마르스 신전, 원형극장, 도수로, 베키오다리의 마르스 기마상 등 피렌체 시민들은 시내 어디를 가도 고대 로마의 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혹은 그렇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로마 시대의 것이라고 믿었던 건물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수두룩했다. 필리포가 로마로 떠났을 무렵에는 피렌체 공화국이 어떻게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논의가 무성했고 로마 유적은 가축의 여물통이나 석회로 만들어서 뿌려졌다.
필리포는 로마에 도착해 유적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땅을 팠고, 인부를 동원하여 파낸 흙을 운반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보물 사냥꾼으로 오해했다. 발굴 작업과 연구를 하면서 암호문을 작성했고 필리포는 반듯한 막대기를 가지고 기둥과 건물의 높이가 능히 잴 수 있었다. 이처럼 필리포는 고대 유적 발굴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했으며, 이는 그의 건축 기술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필리포가 보물을 찾는 것으로 오해했지만, 실제로 그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학자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1.4. 마이동풍
1416이나 1417년 즈음 필리포가 피렌체로 돌아왔을 때, 그는 대성당 부근에 있던 어린 시절의 집으로 돌아갔다. 돔의 완공을 가로막는 난제를 해결하는 데 골몰해 있던 사람이 공사의 추이를 지켭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당시 환상벽은 완성되어있었고 돔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벽의 두께를 4.2미터로 잡았다. 1413년에는 거대한 신형 기중기가 등장하여 자재를 끌어올리는데 동원되었다. 어느덧 필리포도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고 여타할 업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1418년 당시에 필리포는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견한 실험으로 유명했을 것이다. 필리포는 원근법을 지배하는 수학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가 정립한 소실점의 원리는 사실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다른 수많은 지식과 마찬가지로 까맣게 잊혀 있었다. 필리포의 원근법 실험은 거의 마술을 방불케 하는 착시 기법이었다. 흔히 눈속임 그림이라고 부르는 기법이었는데 눈속임 그림은 실물과 혼동될 만큼 정교하게 그린 그림으로, 훨씬 나중에 등장하는 카메라 옵스큐라, 파노라마, 디오라마, 반사광학 미술은 모두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418년 돔의 설계 공모 공고가 올라왔다. 설계안이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버팀대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회반죽이 굳을 때까지 돔의 석재를 지탱하는 임시 목조 구조물을 사용했는데 목재의 수급부터 사용까지 문제가 이만저만 아녔다. 필리포는 궁륭 꼭대기의 벽돌들을 수평에서 60도 기울여서 쌓는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사람들은 필리포가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심지어 필리포는 심사 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혁신적인 설계안을 설명하는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 필리포는 달걀을 평평한 탁자 위에 세우며 자신의 설계안도 너무 간단한 것이라서 당신들이 척 보기만 해도 돔을 너끈히 세울 수 있다고 하며 그의 설계안이 그 자리에서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냥 일화일 뿐이고 1418년 12월 심사 위원단이 마지막 남은 두 모형에 집중되었다. 그중 하나는 필리포의 오랜 앙숙 로렌초 기베르티가 설계한 것이었다.
자신의 설계안을 심사위원에게 설렁설렁 이야기하는 필리포의 모습에서 불성실함을 느꼈지만 그의 태도에서 근거있는 자신감도 느낄 수 있었다. 필리포의 생각은 항상 새로움에서 시작되며 틀에 박혀있지 않았다. 항상 틀에박힌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1.5. 맞수 로렌초
로렌초 기베르티는 십 육년 동안 호시절을 보냈다. 나이 마흔에 이탈리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상급 예술가가 되었다. 필리포와 달리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었다.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만든 묘, 나뭇가지처럼 생긴 촛대, 성물 보관소, 시에나 대성당의 세례반 부조, 직물상 조합이 의뢰한 세례 요한의 청동상이 모두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로렌초는 건축가가 지녀야 할 이력이 없었다. 필리포의 돔 모형과 달리 로렌초의 것은 크지도 않았고 복잡하지도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사업단의 의욕은 사라져만 갔다. 사업단은 공식적으로 어떤 모형을 채택하지 않았지만, 그가 제작한 벽돌 모형은 이미 대성당 안에 들어가 있었다. 사업단은 돔을 올리는 데 이용할 모형을 제시한 사람에게 200플로린을 지급하겠다던 애초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포는 비록 돈은 못 받았지만, 자신의 혁신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돔을 올릴 기회를 얻었기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았다. 필리포는 로렌초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겼으며, 사업단에게 보상을 지급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이어나갔으며 그의 업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필리포는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더라도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1.6. 성도 이름도 없는 사람들
산타마리아 대성당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은 공사시간 단축을 위해 주로 돔 공사현장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들은 장시간 높은 곳에서 일해야 했으며 품삯은 박했다. 궂은 날씨에는 일감도 없었다. 그래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날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매일 대성당으로 떠났다. 돔의 구조는 임원들과 토론을 해가며 바꾸었다. 본래는 중심틀이 아예 없는 구조였지만 1/5 정도만 중심틀 없이 쌓기로 약속하며 절충안을 수용했다. 필리포는 속으로는 속상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설계안을 검토해볼 좋은 기회였다. 돔을 지을 때 실제 경험을 통해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데 임원진과 필리포는 의견 일치를 보였다. 이는 지나친 낙관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시행착오의 과정은 시작되었다."이 내용은 필리포의 시행착오의 시작보다는 인부들의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당시에는 현재와는 달리 인부들에게 휴식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으며 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1.7. 듣도 보도 못한 기계
필리포는 소가 끄는 권양기를 발명하였다. 이는 공학의 역사에서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중요한 혁신으로 평가받는 가역 기어를 채택했었다. 이는 당시 기술보다 몇 세기는 앞선 기술이었다.
필리포의 권양기는 높이 4.5미터의 목재틀, 그리고 여기에 연결된 여러 개의 수평 또는 수직의 축 내지는 굴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굴대들은 크기가 제각각 다른 치차가 돌아갈 때 함께 돌아갔다. 수직축을 회전시키는 손잡이에 연결된 한두 마리의 소가 이 기계를 돌렸다. 기어 변환은 나선형의 홈이 파인 대형 나사로 했다. 나사를 어느 방향으로 돌리느냐에 따라서 회전통이 상하 운동을 한다. 수직 치차와 수평 치차가 맞물리면 소의 회전 운동이 운반통의 상하 운동으로 전환된다. 이 나사는 클러치의 역할을 한다.
당시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건축물을 짓는 것도 놀라웠지만 당시 클러치에 관한 기초 연구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클러치를 발명해 권양기에 적용했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필리포가 어떻게 이러한 혁신적인 기계를 발명할 수 있었는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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