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어 학회 사건과 식민사관"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식민지 문화 정책과 민족 문화 수호 운동
1.1. 일제의 식민지 교육·문화 정책
1.2. 국학 운동의 전개
1.2.1. 한글 보급 운동
1.2.2. 한국사 연구 활동
1.3. 교육 운동과 종교 활동
1.3.1. 조선 교육회의 활동
1.3.2. 민립 대학 설립 운동
1.3.3. 문맹 퇴치 운동
1.3.4. 과학 대중화 운동
1.3.5. 종교 단체의 활동
1.4. 문예 운동
1.4.1. 문학 활동
1.4.2. 민족 예술 활동
2. 국사교과서 논란의 변천
2.1. 1960-1990년대의 교과서 논란
2.1.1. 1981년 국회 공청회
2.1.2. 국사편찬준거안 마련
2.2. 2000년대 이후의 교과서 논란
2.2.1. 2002년 보수언론의 비판
2.2.2. 2004년 민중사관 비판과 뉴라이트 대응
2.2.3. 2008년 금성교과서 수정 논란
2.2.4. 2013년 뉴라이트 교과서 통과 논란
3. 뉴라이트 사관의 특징과 문제점
3.1. 뉴라이트 사관의 특징
3.2. 뉴라이트 교과서의 문제점 분석
3.3. 민중사관과의 관점 비교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식민지 문화 정책과 민족 문화 수호 운동
1.1. 일제의 식민지 교육·문화 정책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강구하였다. 특히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동화 정책을 강화하고 우리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왜곡하였다.
일제는 우민화 교육을 통해 이른바 황국 신민화를 도모하였다. 교육 목표는 한국인의 황국 신민화였으며, 이를 위해 일본어 교육을 강요하고 민족주의 교육 기관을 억압하였다. 또한 실업 기술 교육에 치중하여 식민 통치에 유용한 하급 기술 인력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중·일 전쟁 이후에는 내선 일체, 일선 동조론, 황국 신민화와 같은 구호 아래 우리말·우리 역사 교육을 금지시켰다.
언론 분야에서도 국권 피탈 직후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항일 민족지를 폐간하는 등 탄압을 가하였다. 3·1 운동 이후에는 조선·동아 일보의 발행을 일부 허용했지만, 여전히 검열과 정·폐간으로 억압하였다.
한편 식민 사관을 통해 한국 민족사의 근원을 왜곡하고, 한국사의 타율성·정체성을 강조하며 자율성·독창성을 무시함으로써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고자 하였다. 또한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 활동에 대해서도 안악 사건·105인 사건 조작, 신사 참배 강요 등으로 탄압하였다.
이와 같이 일제는 식민지 교육·문화 정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일본에 동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1.2. 국학 운동의 전개
1.2.1. 한글 보급 운동
조선어 연구회와 조선어 학회는 한글 보급 운동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어 연구회(1921)는 대한제국 시기의 국문 연구소를 계승하여 이윤재, 최현배 등의 주도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노력하였으며, 강습회와 「한글」잡지를 간행하고 '가갸날' 제정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어 조선어 학회(1931)가 조선어 연구회의 확대 개편 형태로 등장하였다. 조선어 학회는 한글 교재 출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표준어 제정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42년 일제에 의해 해산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조선어 연구회와 조선어 학회는 일제 강점기 동안 민족 문화 수호를 위해 한글 연구와 보급에 힘썼으며, 한글 교재 발간, 한글 맞춤법 통일, 표준어 제정 등 한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1.2.2. 한국사 연구 활동
민족 사학자들의 한국사 연구 활동은 일제의 식민 사관에 대항하여 민족주의 역사학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에 치중하여 민족 사관의 기초를 확립했고, 박은식과 정인보는 한국인의 얼과 정신사적 측면을 강조했다. 안재홍은 민족주의 역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또한 진단학회의 이병도, 조윤제, 손진태, 신석호 등은 실증주의 사학을 바탕으로 한국학 연구에 기여했다. 이처럼 민족 사학자들은 일제의 민족사 왜곡에 맞서 한민족의 기원, 문화의 우수성, 그리고 주체적 발전을 강조하며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1.3. 교육 운동과 종교 활동
1.3.1. 조선 교육회의 활동
조선 교육회의 활동은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 정책에 대항하여 전개된 대표적인 민족 교육 운동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위해 우리 민족에 대한 우민화 교육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민족 지도자들은 조선 교육회를 조직하여 한민족 본위의 민족 교육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조선 교육회는 1920년에 조직되었다. 이들은 식민지 교육으로 고등 교육이 제한되고 실업 교육에 치중하는 일제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였다. 대신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사립 학교, 종교 계통의 학교, 개량 서당, 야학 등의 민족 교육 기관들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조선 교육회는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총독부에 민립 대학 설립을 요구했지만 총독부에 의해 거부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조선 교육회는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맞서 민족 중심의 교육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총독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3.2. 민립 대학 설립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일제시대 민족 교육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1920년대 초반 식민 지배에 항거하며 자주적인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1923년 이상재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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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차 사회과 교육과정 해설설
한국역사입문 3, 풀빛 1996
한국사 교과서의 희망을 찾아서, 역사비평사 2003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1, 역사비평사 1998
한국사 14(식민지시기의 사회경제-2), 한길사 1994
역사학보 제 183 집 비평논문 근대Ⅱ 李浩龍
윤종영, 국사교과서 파동, 혜안
김광훈, 제7차 교육과정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편향성 논란 , 서울 :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8
임덕기,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서울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2
김혜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의 배경과 양상 : 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서울 :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8
조경연,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서술과 역사 인식 : 대한민국 정부수립 문제를 중심으로, 서울 :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2010.2
역사문제연구소 - 교학사 교과서 검토
민족문제연구소 - 손뼉 친 <산케이> "교학사 '식민지 근대화론' 도입"
[단독]뉴라이트가 만든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2013년 5월 31일, 송현숙 기자 (경향신문)
수상한 교학사... 명성황후 살해범 생각을 왜?, 2013년 9월 04일, 윤근혁 기자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