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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 - 코르뷔지에
1.1.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는 1887년 10월 6일 스위스 서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 라쇼드퐁(La Chaux-de-Fonds)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추상화 스케치에 능했다. 순수미술에 관심이 있던 그는 시계 장식미술을 가르치는 장식미술학교에 입학했고, 그의 우수한 그림 실력이 눈에 띄었다. 그의 스승 샤를 레플라토니에는 꾸준히 그에게 건축가가 되라고 권유했지만, 당시 그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레플라토니에가 소개시켜준 건축가 샤팔라 밑에서 건축을 배우게 되었고, 그의 초기 주택들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벗어나 자주 유럽 곳곳을 여행 다녔으며, 30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이주를 결심했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경험은 그의 건축 실무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8년부터 1922년 사이 그는 입체파 화가인 아메데 오장팡을 만나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를 알아보게 되었고, 이후 순수주의 이론과 회화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1922년부터 1927년 사이 그는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많은 개인 주택들을 설계했으며, 1930년에는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건축과 관련된 일을 했으며, 1965년 8월 37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2. 필명, 르 코르뷔지에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는 르코르뷔지에 라는 이름으로 첫 기사를 작성했으며, 이후 이 이름이 그의 필명이 되었다. 이 필명은 그의 외할아버지의 이름인 "르 코르베지에"를 변형한 것으로,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성명의 구분이 없는, 하나로만 된 이름을 갖는 것은 이 시기의 많은 영역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이었으며, 그 역시 그러한 흐름을 따랐다.
2. 발상
2.1. 건축의 다섯가지 요소
필로티
필로티는 철근 콘크리트나 철골 구조의 발달로 인해 구조체로서의 벽이 유지하고 있던 기능적 필연성을 제거하고 콘크리트와 철골 기둥으로 구조체를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가구의 다리와 같은 필로티가 "거주하는 상자"를 지탱하고 있으며, 이러한 건축은 지구상 어디서나 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상도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1929년에 이르자 르 코르뷔지에는 모든 지면은 사람들의 활동과 식물에게 할애되어야 하며 일과 거주를 위한 공간은 지면 위에 자리잡으면 된다고 제안하였다.
자유로운 파사드
파사드의 폭 내에서 창의 가로폭은 무제한으로 확정될 수 있다는 특성을 암시하고 있는 도미노 시스템은 모든 실내공간을 한결같이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트로앙주택이나 바이센호프주택에서 필로티 위에 얹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어 국제연맹본부 계획안에서는 길이 200m에 이르는 가로로 긴 창이 선보이게 되기도 하였다.
자유로운 평면
건축평면은 구조벽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의 참된 유연성을 추구하였다. 즉 내부공간의 구성을 사용자의 자유에 맡긴다는 사고방식으로, 1932년 알지에 계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고 바이센호프 주택에서 가동식 칸막이를 도입하여 야간에 거실을 3개의 작은 침실로 바꿀 수 있게 처리하였다. 이러한 자유로운 평면의 개념은 단지 주거공간에 참다운 가동성을 확보한다는 방법에 그치지 않고 그의 공간적이고 조형적인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법이 되었다.
수평창
자유로운 파사드의 건축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