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세계간호역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1.1. 간호역사 학습의 필요성과 목적
2. 한국간호의 역사
2.1. 조선시대 간호
2.2. 개항기와 구한말의 간호
2.3. 일제강점기의 간호
2.4. 해방 직후부터 정부수립기까지의 간호
2.5.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의 간호
2.6. 성장기의 간호
2.7. 발전기의 간호
3. 세계간호의 역사
3.1. 고대의 간호역사
3.2. 중세 전반기 역사와 간호
3.3. 중세 후반기 역사와 간호
3.4. 근대역사와 간호
3.5. 현대의 간호역사
3.6. 영국의 간호
3.7. 미국의 간호
4. 결론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1.1. 간호역사 학습의 필요성과 목적
원시 시대의 보호본능과 모성애적 간호에서 오늘날 인간존엄성과 생명존중사상에 기반한 현대간호에 이르기까지 간호는 자가간호, 가족간호, 종교적 간호, 직업적 간호의 발달과정을 거쳐 모든 사람들의 건강증진과 복지사회의 건설로 집약되는 현대 전문직 간호에 이르렀다. 간호의 본질은 간호하는 자와 간호를 받는 자 사이에 필요한 보살핌과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며 간호의 역사는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온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간호역사는 일반 역사에 기초한 간호사업의 과거와 인류에 대한 봉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세계사적 사건들과 변화들이 간호사업에 미친 영향과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간호사업의 위치와 가치는 어떠하였는지 알아보고, 간호지도자들은 그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였으며, 그들의 사상과 활동이 각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기여하였는지를 알아본다. 이는 곧 오늘날의 간호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얻고 미래의 간호사업을 계획하고 설계하는데 참고할 수 있다.
2. 한국간호의 역사
2.1. 조선시대 간호
태종 원년(1392)에 전의감, 혜민국, 동서대비원을 설치하고 후에 제생원으로 신설하여 1405년에는 4개 기관이 있었다. 그 뒤 제생원은 혜민서와 통합되었고, 세조 12년 직제개편 때 내의원, 전의감, 혜민서, 활인서로 정비되었다. 혜민서는 일반백성의 의료와 각 도에서 선발된 의녀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제생원은 태종 6년에 최초로 의녀를 양성한 기관이다. 의녀는 모두 한양의 관비였고 활동 역시 한양에 주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지방의 부녀자는 의녀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지방출신 의녀가 서울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세종 17년부터이다. 조선은 주자학의 영향으로 남녀의 구별이 엄격해지자 기존의 남자 의원에게 여성들이 진료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새롭게 여성 의료인을 양성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조선왕조가 의녀제도를 창설하면서 상당한 학식이 필요한 의약분야조차 천인을 뽑았다. 선발된 인원은 제생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다가 세조 6년(1460)에 제생원과 혜민서가 통합되면서 의녀교육도 혜민서에서 관장하였다. 의녀는 대개 의원의 보조자로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의학의 전 분야에 정통하게 되는 것보다는 한두 가지의 능력이라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의녀들은 왕비나 사대부 여성들의 질병을 치료를 담당하였고, 간호, 조산, 진찰, 치구, 명약 등의 다섯 가지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연산군 대에 이르러 의녀제도는 변화하여 의술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업무들도 수행하게 되었다. 국가에서는 의녀에게 자식은 양인이 되도록 하였고, 치장을 허용하였으며 급여 외에도 특전을 제공하였다.
2.2. 개항기와 구한말의 간호
고종 14년(1877) 일본해군이 부산에 제생의원을 설치하였다. 이 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양의학에 의한 병원이었다. 고종 33년(1896)에는 이 병원이 공립병원으로 사용되다가 청일전쟁의 발발로 병참병원으로 사용되었다. 고종 17년(1880)에는 원산 생생병원이 설치되었다. 고종 21년(1884)에 설립된 영사관 부속병원은 고종 25년(1888)에 인천공립병원이 되었으며, 청일전쟁이 벌어지면서 인천병참병원으로 개칭되었다. 고종 34년(1897)에는 공립병원이 설치되었다. 제중원은 개원 1년 여 동안 외래 환자와 왕진환자의 합수가 만여 명에 달하였다. 1886년에는 북장로교회의 엘러스가 부인부를 담당하며 왕비 및 왕실부인들의 진료를 맡았다. 제중원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병원에서 환자의 간병인과 함께 환자를 간호하였다. 알렌은 의녀제도의 전통을 이어 여성의료인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 밖에도 개항기의 서양인 선교 간호사는 최초의 선교간호사인 에밀리 히트코트, 성 마태병원에서 근무한 웹스터, 장로교 해외 선교부에서 파송된 첫 간호사 제콥슨, 한국의 나이팅게일이었던 쉬일즈, 세브란스 간호사 양성소 소장이었던 로렌스 등이 있다. 고종 32년(1895) 경성을 비롯한 각 지방에서 콜레라가 대유행하여 처음으로 전염병에 대한 법령이 반포되었다. 고종 36년(1899) 외래중심의 내부병원(이듬해 광제원으로 개칭)이 설립되었다. 1902년 다시 전국적으로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광제원은 콜레라 방역을 위한 기관으로 변신하였다. 통감부 설치 후 광제원의 일본인 의료인력이 증가되면서 병원의 성격도 서양의술 중심의 기관으로 바뀌었다. 이비인후과, 일반외과, 안과, 부인과 등이 개설되었으며 입원과 수술도 시행되었다. 따라서 전문 간호업무 기술을 다루는 일본 간호부 3명도 근무하게 되었다. 1905년에는 상병자를 구호하기 위해 대한적십자사가 설립되었다. 이는 곧 부상자와 병자를 구호하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으로 개정되었으며 1907년 대한의원이 개원하며 합병되었다. 대한의원은 개원 당시부터 산파와 간호부를 두어 대한제국의 자주적 의료 근대화 사업의 성과라고 불린다.
2.3. 일제강점기의 간호
일본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간호제도와 교육, 그리고 간호단체와 실무가 변화하였다. 1914년 간호부규칙이 제정되어 간호사 자격과 면허에 대한 최초의 규정이 마련되었다. 1922년 이 규칙이 개정되어 간호사와 조산사의 자격요건과 면허제가 보다 구체화되었다. 이후 1931년 조선간호부규칙과 조선산파규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44년 조선총독부는 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 의료인력 전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조선의료령을 제정하였다.
일제강점기 간호교육은 일본의 제도에 따라 발전하였다. 1911년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가 개설되면서 공식적인 간호교육이 시작되었다. 1912년에는 교육 대상에 일본인과 남성까지 확대되었다. 1917년에는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에서 간호부 양성소를 설치하였다. 이후 사립 간호학교들도 개설되면서 간호교육이 확산되었다. 1920년대 들어 간호교육의 수요가 증가하자 총독부는 사립 간호학교 졸업생의 면허 취득을 인정하였다.
선교계 간호교육도 활발하였다. 1908년 보구여관에서 최초의 간호원양성학교가 시작되었다. 1906년에는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가 개설되었다. 1920년대 이후에는 선교계 간호교육이 더욱 확대되었으나 1930년대 후반 일제의 탄압으로 위축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간호사들은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3·1운동, 군자금 모집, 임시정부 지원, 노동운동 등에 간호사들이 동참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같은 여성단체에서도 간호사들이 활약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간호사 자격 시험이 검정고시 제도로 변경되었고, 1946년에는 보건후생부가 기존 병원부설 간호부양성소 제도를 폐지하고 고등간호학교 체제로 개편하였다. 1957년에는 간호교육기관이 문교부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2.4. 해방 직후부터 정부수립기까지의 간호
미군정은 보건행정의 전문화와 확대를 위해 경무청 위생과를 보건후생국으로 승격시켰다. 1945년에는 보건후생부로 개편되었으며 그 산하에는 간호사업국, 의무국, 예방의학국, 약무국, 후생국, 위생국 등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간호사업과로 격하되었다. 또한 국방예산 증액 등의 이유로 보건후생부가 사회부의 산하로 들어가면서 간호행정조직은 계 단위조직으로 축소되었다.
당시 간호사와 조산사의 자격시험은 검정고시에 의한 면허 취득 제도였다. 간호업무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으로 1962년 의료법이 개정됨과 동시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1946년 보건후생부는 기존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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