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범어사 개요
1.1. 범어사 위치 및 창건 연혁
범어사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산의 북동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금정산은 부산의 명산으로 고당봉을 주봉으로 장군봉, 상게봉, 백양산까지 이어진 산이다. 범어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라 시대 문인 최치원이 904년에 찬술한 글이며, 이에 따르면 범어사는 당시 해동의 주요 사찰 중 하나였다. 그러나 범어사의 창건 시기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7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사이에 범어사가 창건되었으며 신라 이후 고려 시대에도 사찰이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범어사는 임진왜란 당시 파괴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중창되었으며 숙종 때에는 금정산성의 수축과 함께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다.
1.2. 범어사의 화엄사상
범어사는 신라 때 창건된 화엄종 사찰이다. 화엄사상은 일심(一心)법계관, 사법계관, 이사무애법계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일심법계관은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는 생명적 세계관을 전개한다. 사법계관은 실재계, 이념계, 차별계, 평등계의 네 가지 법계로 구분되며, 이들은 차별되지만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사무애법계관은 이념계와 실재계, 차별과 평등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침투하는 관계를 말한다. 화엄사상은 모든 존재가 서로 모순되지 않고 깊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데, 이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연기로 설명한다. 한 개별 존재 속에 전체 우주가 들어 있으며, 전체 우주를 구성하는 각각의 존재 또한 매우 소중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엄사상은 생명의 가치적 세계관을 설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화엄사상은 범어사 창건의 배경이 되었으며, 범어사는 화엄 10찰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1.3. 범어사의 역사와 주요 스님
범어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그 기록은 최치원이 904년에 저술한 『법장화상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범어사는 신라 시대부터 이름 있는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범어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와 중창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7세기 후반부터 9세기 전반 사이에 창건되고 중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당시 범어사는 파괴되었으나, 선조 35년(1602) 관선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이후 광해군 5년(1613)에 여러 스님들의 힘으로 다시 중창되었다. 이로써 범어사는 많은 고승을 배출하며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특히 한말과 일제 시기에는 선찰대본산으로 지정되어 민족적인 사찰로서 한국 불교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다.
범어사의 주석 스님들 중 두드러진 인물로는 경허스님과 동산스님을 꼽을 수 있다. 경허스님은 1903년에 범어사에서 수선결사를 주도하여 선불교 중심의 개혁을 이끌었다. 그의 영향으로 범어사는 1910년 한국불교의 선종 수사찰로 인정받았으며, 1913년에는 선찰대본산으로 확정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동산스님이 1950년대 불교 정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는데, 이는 근대불교를 지향하는 범어사의 사상적 맥락을 계승한 것이었다. 이처럼 범어사는 오랜 역사 동안 한국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2. 범어사 가람 배치
2.1. 가람 배치의 특징
가람 배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범어사는 두 산세가 맞부딪치며 이루는 Y자형 계류 사이에 위치하며, 계류가 하나로 합쳐지는 곳은 세속과 처음으로 분리되는 역이자 문지방에 해당한다. 높은 대지상의 사역은 그 아래 모든 세속의 중심이며 계류는 주변 세계와 가람을 분리하는 가장 적극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배치는 자연지세를 활용한 배치를 하였고, 건물로 감싸진 마당을 형성하였다. 일주문-천왕문-불이문으로 이어지는 직선축과 보제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마당 배치는 화엄사상의 이상향인 화장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창건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자연지세를 적절히 활용하여 성스러운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2.2.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
범어사의 하단건물들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을 비롯하여 천왕문, 불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문은 삼문(三門)이라고도 한다.
일주문은 신라 중기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1614년에 재건되었다. 일주문은 두 기둥을 나란히 세운 일반적인 일주문 양식과는 달리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일주문의 중앙에는 '조계문(曹溪門)'이 걸려있어 범어사가 선종 사찰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좌우에는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와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일주문을 지나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천왕문에는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불교 전래 이전부터 있었던 토속신앙의 신령으로, 불교에 수용되어 부처와 보살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천왕문은 인과의 도리를 모르는 무리들을 힘으로 굴복시켜 교화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천왕문은 개방이면서도 폐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마지막 문인 불이문이 나온다. 불이문은 1699년에 건립되었으며,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불교의 근본 이치를 상징한다. 불이문의 어칸에는 '신광불매만고휘유'와 '입차문내막존지해'라는 주련이 걸려있어, 이 문을 통과할 때는 분별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처럼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은 차례로 통과하며 세속에서 벗어나 성스러운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주문은 세속과 성스러운 공간을 경계 짓고, 천왕문에서는 악한 행위를 제거하여 진리 인식의 단계로 나아가며, 마지막 불이문에서는 모든 대립과 분별을 초월하는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 즉, 이 세 문을 통과하는 과정은 곧 중생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2.3. 보제루와 중앙 마당
보제루는 불이문을 통과하면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건물이다. 높은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다른 사찰들은 누각 밑을 통과하게 되지만 보제루는 누각 정면에 석계를 배치한 것이 범어사만의 특징이다. 실제로 이 석계를 올랐을 때는 많은 오르막길을 걸은 뒤라 상당히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보제루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오면 보제루의 북쪽에 종루와 종각이 위치하고 있다. 예불이나 의식을 할 때 사용되는 시설이다.
마당 자체도 남도의 3대 사찰이라는 범어사의 격을 보여주듯 굉장히 넓은 편이다. 여러 건물들이 군집되어 있으며, 행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제루에서 대웅전으로 향할 때는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한 대웅전이 경내를 굽어보는 모습이 된다. 이처럼 보제루와 중앙 마당은 범어사 가람 배치의 중요한 부분으로, 수직으로 상승하고 개방된 공간이 형성되어 참배객들에게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볼 수 있다.
2.4. 대웅전과 관음전, 지장전
대웅전은 범어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구조이다. 건물 전면에는 가구식 기단이 있으며, 처마는 부연과 연목을 두는 겹처마 형태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셨으며,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함께 모시고 있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목조 건축물로, 건물 구조와 불감 장식의 정교함을 통해 당시 불교 건축의 수준을 보여준다.
관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