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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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배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가람배치의 역사적 변화
1.1. 삼국시대
1.1.1. 고구려의 1탑 3금당식 가람배치
1.1.2. 백제의 다양한 가람배치 형태
1.1.3. 신라의 1탑 3금당식 및 쌍탑식 가람배치
1.2. 남북국시대
1.2.1. 통일신라의 쌍탑식 가람배치
1.2.2. 발해의 지역별 가람배치 특징
1.3. 고려시대의 가람배치
1.4. 조선시대 가람배치의 변화

2. 주요 가람배치 유형
2.1. 1탑 3금당식 가람배치
2.2. 1탑 1금당식 가람배치
2.3. 쌍탑식 가람배치

3. 대표적인 가람배치 유적
3.1. 고구려 청암사지, 정릉사지
3.2. 백제 군수리사지, 정림사지
3.3. 신라 황룡사, 사천왕사지
3.4. 발해 상경용천부 제6절터
3.5. 고려 법왕사, 사나사
3.6. 조선 은해사, 전등사

4. 가람배치의 의미와 특징
4.1. 시대별 가람배치 변화의 의미
4.2. 가람배치와 불교 사상의 관계
4.3. 가람배치의 지역적 차이와 영향

5. 결론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가람배치의 역사적 변화
1.1. 삼국시대
1.1.1. 고구려의 1탑 3금당식 가람배치

고구려의 1탑 3금당식 가람배치이다. 고구려는 삼국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였으며, 소수림왕 2년(372년)에 중국 전진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 이후 고구려는 이불란사와 초문사를 건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수의 절을 지었다. 현재 발굴된 고구려의 절터로는 평원군의 원오리사지, 대동군의 상오리사지, 평양 교외의 청암리사지와 정릉사지가 있다.

이 절터들의 특징은 중앙에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평면 8각형의 건물지가 있고, 동·서·북쪽에 금당이 있으며, 남쪽에는 중문을 둔 1탑 3금당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1탑 3금당식 가람배치는 탑이 중심에 위치하고 금당의 위치가 한자의 품(品)자와 같다고 하여 '품자형 가람배치'라고도 불린다. 또한 사지가 당시 중국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사지와는 달리 회랑으로 둘러 쌓여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고구려의 1탑 3금당식 가람배치 형식은 백제와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백제의 군수리사지와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데라(飛鳥寺)가 그 예이다. 고구려의 사지는 당시 중국의 사지와 달리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백제와 일본에 영향을 미쳤다.


1.1.2. 백제의 다양한 가람배치 형태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에 중국 동진(東秦)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고, 그 이듬해에 한산(漢山)에 절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의 가람배치는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백제의 가람배치 중 군수리사지와 정림사지는 남북축선상에 탑과 금당을 하나씩 두는 1탑 1금당식 가람배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이는 당시 통념이었던 1탑 1금당식 가람배치와 일치한다.

하지만 미륵사의 경우 탑과 금당이 각각 3개씩 있었고, 각각 3개의 독립된 구역을 만든 3탑 3금당식의 형식을 보여준다. 이는 백제 문화의 다양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제의 귀족 문화가 가진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특성이 가람배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백제에 전래된 불교의 전파 경로가 고구려와는 달리 중국의 남조에도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군수리사지는 1탑 3금당식의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동남리사지는 탑이 없거나 별도의 구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백제의 가람배치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이는 백제 문화의 다양성과 불교 전파 경로의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제의 1탑 1금당식 가람배치는 일본과 신라에 영향을 주었는데, 일본의 시텐노지(四天王寺)와 신라의 황룡사지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1.1.3. 신라의 1탑 3금당식 및 쌍탑식 가람배치

눌지왕 때 고구려에 의해 불교가 전래된 신라는 법흥왕 14년(527)에 불교를 공인하였다. 불교가 공인된 이후 흥륜사와 영흥사, 황룡사, 기원사 등 여러 사찰을 창건하였다. 이 중 발굴 조사를 통해 가람배치를 알 수 있는 것은 황룡사지뿐이다.

황룡사지는 가람배치 형식의 변화가 세 차례에 걸쳐 있었다. 창건 당시에는 백제식의 1탑식 가람배치였으나, 이후 진평왕 6년(584)에 중건 시 금당을 완성시켰고, 선덕왕 14년(645)에는 목조 9층탑을 완공하였다. 경덕왕 13년(754)에는 종루와 경루가 건립되어 최종적인 배치 형식을 갖추었다. 황룡사는 최종적으로 1탑 3금당식 가람배치 형식을 띠었다.

황룡사는 남북선상에 대문, 중문, 탑, 금당, 강당을 일렬로 배치하고 금당 좌우에 동·서금당을 배치하여 고구려의 1탑 3금당식 가람배치의 영향을 받았다.

통일신라에 이르러 가람 형식의 변화가 나타났다. 1탑식 가람배치에서 금당을 중심으로 그 앞에 두 개의 탑을 두는 2탑식 가람배치로 발전하게 된다. 사천왕사와 감은사, 불국사, 실상사 등이 대표적이다.

2탑식 가람배치는 중문에서 강당에 이르는 모든 건물들이 남북을 주축으로 좌우 대칭하여 배치되고, 양 탑은 금당의 전면 좌우에 대칭하여 놓인다. 이러한 2탑식 가람배치는 도성 근처에 많이 조영된 평지가람에 주로 사용되었다. 신라의 2탑식 가람배치는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다.

통일신라 중기 이후 선종이 널리 보급되면서 가람이 점차 산으로 이동하였다. 이에 따라 경영문제나 지세의 제약 등으로 인해 회랑이 없어지면서 엄격한 가람배치의 양식이 점차 무너지게 되었다. 해인사와 부석사, 화엄사, 법주사 등 산지가람이 대표적이다.


1.2. 남북국시대
1.2.1. 통일신라의 쌍탑식 가람배치

통일 직후에 성립된 쌍탑가람은 금당 앞 좌우로 두 개의 탑을 나란히 세우는 형식이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신라에서 확립된 방법이다. 통일 직후에 완성된 쌍탑식 가람배치는 8세기 중반에 이르러 불국사를 필두로 많은 사찰에 수용되어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의 한 전형으로 정착되었다.

쌍탑식 가람배치에서는 탑과 탑 사이의 간격을 기준으로 사찰의 건축이 계획되고, 1탑식 가람에 비해 탑보다는 금당에 중심을 둔 배열법이다. 1탑1금당의 경우 전면의 거대한 탑이 금당을 가로막아 가람배치와 신앙의 중심이 탑에 집중되나, 쌍탑식은 금당 좌우로 분산되어 금당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신라 말기 9세기에는 선불교가 유입되면서 각지에 선문 사찰들이 건립되기 시작한다. 선불교는 교종의 합리적 교리들을 부정하지만 건축형식은 기존의 쌍탑식 가람을 계승했다. 다만 장흥 보림사와 남원 실상사처럼 쌍탑의 규모가 축소되고 금당이 확대되는 금당중심의 형식적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또한 울산 간월사와 같이, 두 탑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 금당과 두 개의 탑이 각각 독자적으로 세워지는 형식적 변화도 시도되었다.

쌍탑식 가람은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로 퍼져나갔다. 쌍탑식 가람 중 창건에 대한 문헌기록이 남아있는 사찰은 왕실과 최고귀족들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어, 이는 쌍탑식 가람이 신라 왕실과 귀족들의 정체성 표현이었음을 보여준다.

기본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는 중문-금당-강당이 남북일직선상에 위치하고, 금당과 중문의 중심축을 중심으로 동, 서 2개의 탑이 금당의 전면에 배치되는 형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경주 사천왕사지와 감은사지를 들 수 있다.

사천왕사지는 남쪽 중앙에 중문지가 있고, 그 안쪽 동, 서로 탑지가 있다. 다음 그 안쪽 중앙에 금당지가 있고, 금당지 뒤 동, 서에 경루지와 종루지가 있으며, 그 북쪽 중앙에 강당지가 있다. 중문좌우에서 시작된 회랑이 북쪽 강당의 좌우에까지 남북으로 긴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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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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