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1.1. 잊을수없는 6.25
25전쟁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정확히 70년 전인 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전쟁이었다.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최전방부터 지속적으로 밀려 낙동강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당시 낙동강 서쪽으로 흐르고 있던 창녕 지역은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미 제2사단이 북한군 제1군단 예하 제4사단과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벌였던 창녕전투는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창녕에는 이를 기리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창녕에 있는 역사유적지를 자주 방문했다. 이러한 경험은 필자에게 역사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을 만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을 듣고,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필자는 역사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특히 6.25전쟁과 관련된 창녕의 전적지가 필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필자와 가족이 창녕의 박진전쟁기념관 건립에 적지 않은 기부를 했기 때문이다. 둘째, 필자의 가문에서 6.25전쟁 당시 많은 분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무덤을 찾아다녔고, 이를 통해 6.25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약 10년 전 창녕에 내려왔을 때에는 6.25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당시 필자는 인맥을 활용하여 직접 유해 발굴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처럼 필자에게 6.25전적지는 역사의식과 기부, 그리고 가족사와 연관되어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록 해당 지역이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6.25전쟁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창녕은 우리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다. 앞으로 필자는 6.25전쟁사에 대한 공부를 더 깊이 하고, 전적지를 더 많이 찾아다니며 역사의 현장을 직접 경험해볼 계획이다. 또한 언젠가 다시 유해 발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1.2.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역사적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직도 그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6.25전쟁은 우리 역사에 뚜렷한 자국을 남긴 사건으로, 필자 또한 그 전쟁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역사의식을 강화하게 되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고향인 창녕을 중심으로 주변의 역사 유적지를 자주 찾아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6.25전쟁 관련 전적지들을 접하게 되었다. 특히 창녕의 교상리에 세워진 창녕지구 전투전적비는 필자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이 비석은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공헌한 미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9년에 세워졌다.
창녕에 있을 때 필자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