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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탁구의 정의와 역사
1.1. 탁구의 정의
탁구는 직사각형의 테이블 중앙에 네트를 치고 양편에서 공을 쳐넘겨 득점을 겨루는 스포츠로, 핑퐁 또는 테이블 테니스라고도 한다. 상대방과의 거리가 짧아 공의 왕복이 빠르며 공이 가벼워 각종 회전구를 구사할 수 있다. 따라서 예민한 반응과 복잡한 전술·기술의 숙련이 필요하다. 또한 옥내경기로 일기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좁은 장소에서 간단한 용구로도 가능한 운동이다.
1.2. 탁구의 기원과 발전
탁구의 기원과 발전은 분명치 않지만, 그 기원을 추정할 수 있는 여러 설이 있다.
중세기 경 이탈리아의 "루식 필라리스"라는 유희에서 변한 것이라고 하며, 15~16세기경 프랑스 궁전의 "라파움"이라는 놀이가 변화하여 탁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1880년대 영국에서 고안되었다는 설과 뉴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더불어 헝가리의 씨가 저술한 책에는 2천 년 전 일본의 公家(현재의 공무원 신분)에서 깃털로 놀이를 한 것이 탁구의 시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어떤 학자는 약 2천 년 전 동양의 각국에서 예컨대 신라의 화랑들이 즐기던 "축국"이 그 원형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탁구의 원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영국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이 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놀 수 있는 유희로 방바닥에 네트를 친 실내경기로 만들었다는 것이 통설이 되고 있다. 국제탁구연맹에서 발간한 편람에서도 고대 중세기 경에 탁구는 테니스, 배드민턴과 구분없이 시작되어 내려오다가 각기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에는 그 명칭도 일정하지 않아서 "고지마", "위프와프", "프림프람" 등 여러 가지로 불리어졌다. 공은 코르크나 센드페이퍼 그리고 고무공이나 거미줄같이 피륙으로 짠 것 등을 시용했고 라켓은 나무 또는 마분지 등을 사용했다. 이후 1898년 셀루로이드 공이 사용되면서 근대 탁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3. 우리나라 탁구의 역사
우리나라에 탁구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도입이 된 것인지 문헌상 분명하게 기록된 것은 없다"" 다만 국제탁구연맹 편람에는 탁구가 1899년 영국에서 일본으로 보급되었고 1900년대 초 한국/중국/홍콩 등지로 전파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에 따라 탁구 계에서는 도입경로를 두 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하나는 인접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문물의 교류와 인적왕래가 잦았던 일본에서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도입되었다는 설이며 또 하나의 다른 경로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교사들이 종교전파의 수단으로 탁구를 이용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분명치는 않다""
대한탁구협회에서는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에서 주최했던 "핑퐁경기대회"를 한국탁구의 효시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을 계기로 탁구는 소수계층의 유희에서 대중적인 스포츠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의 제2회 대회에는 3백 여명의 남녀선수가 참가,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한국의 이용렴 선수가 여자부에서 패권을 차지했다"" 또 1927년에는 조선신궁경기대회에 핑퐁이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어 권상순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우리 손으로 열린 첫 대회는 YMCA체육관에서 개최한 제1회 조선탁구대회이다"" 한국체육사상 특기할 이 신규행사에서는 장경복 선수가 우승했고, 경성제국대학이 주최한 조선학생 탁구대회에서는 방인영 선수가 패권을 차지했다"" 그동안 일본식 연식공을 사용해 왔던 한국탁구는 1936년부터 구미에서 사용하던 경식볼로 전화, 기술개선에 진일보하는 전기를 맞게 된다"" 이해 5월 제1회 전조선 경식탁구대회가 개최되어 최근항 선수가 신예로 등장,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최근항 선수는 1940년 6월 동경에서 열린 범태평양 탁구선수권대회와 이듬해 전 일본 선발탁구대회 그리고 제5회 전 일본 탁구선수권대회를 석권하는 등 발군의 기량으로 한국탁구가 국제무대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우리나라 탁구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이 해방전의 한국탁구는 여명기의 일천한 연륜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뛰어난 자질로 눈부신 활약상을 보임으로써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에 민족의 울분을 탁구를 통해 달래 주었다고 하겠다""
1945년 해방을 맞은 그 해 9월 조선탁구협회가 발족, 당시 동덕여고 설립자였던 조동식씨가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어 1947년에는 대한탁구협회로 개칭하고 첫 사업으로 제1회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또 1950년에는 국제탁구연맹에 가입했고 같은 해 현 아시아탁구연합(ATTU)의 전신인 아시아탁구연맹(ATTF)의 회원국으로 가맹했다""
2. 탁구 경기의 규칙과 운영
2.1. 탁구 경기 규칙
탁구 경기 규칙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탁구 경기는 처음 서브권을 가진 측의 서브로 시작되며, 서브는 최초 서브권자가 2번을 계속해서 넣은 후 서브권이 상대에게 넘어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반복된다. 경기가 10:10으로 동점이 되면 서브를 1회씩 번갈아 넣으면서 2점을 계속해서 선취해야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진영의 교대는 세트가 끝날 때마다 실시되며, 마지막 게임은 어느 한쪽에서 5점을 득점했을 때 진영을 교대한다.
서브 및 엔드의 선택은 시합 전 '가위바위보' 또는 '동전던지기'를 통해 결정한다. 토스의 승자는 서브, 리시브, 엔드 중 하나를 먼저 택할 수 있으며, 패자는 이에 따라 나머지를 택하게 된다.
서브 시 공은 정지한 손바닥 위에서 회전시키지 않고 수직에 가깝게 던져 올려야 하며, 올려진 공의 높이는 16cm 이상이어야 한다. 서브 동작을 취하기 시작해서 라켓으로 맞출 때까지 공은 심판에게 보이도록 탁구대보다 높게 위치해야 하며, 낙하한 공이 라켓에 맞은 다음 자기 진영을 반드시 원바운드된 후 네트를 넘어가야 한다. 경기 중 서브를 헛스윙한 경우 1실점이 된다.
리시브 시에는 상대방의 서브나 리턴에 의해 넘어온 공이 자기 진영에 원바운드되면 직접 상대측 코트로 되받아 넘겨야 한다. 이때 네트나 지주에 공이 닿은 후 상대방 코드로 넘어가도 무방하나 라켓이 탁구대, 지주, 네트에 닿을 경우 실점이 된다.
레트는 서브가 네트를 맞고 정규 지역에 들어간 경우, 리시버가 서브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브가 진행되었을 경우, 경기 중 공이 파손되었을 경우, 서브나 리시브 순서가 바뀐 경우 등에 선언된다.
실점의 경우로는 공을 연속적으로 두 번 칠 경우, 공이 자신의 코트에 계속해서 두 번 맞을 경우, 탁구 라켓을 쥐고 있지 않는 손으로 탁구대 위를 건드릴 경우, 복식에서 순서에 어긋나게 리턴할 경우, 공이 자기 진형 모서리에 맞고 불규칙하게 튀어 리턴하지 못했을 경우, 맨손으로 리턴할 경우, 자기 진영에 바운드되기 전에 리턴할 경우 등이 있다.
게임과 게임 사이에는 1분의 인터벌이 주어지며, 매 6점을 득점할 때마다 짧은 인터벌이 허용된다. 또한 마지막 게임에서는 코트 변경 시 짧은 인터벌이 주어진다.
마지막으로 경기 시간의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촉진 룰'이 있는데, 두 팀 가운데 한 팀의 점수가 9점 이상 차이 나지 않는 한 적용되지 않으며, 게임 진행 10분이 경과되면 서브를 1득점마다 교대로 하면서 리시버가 13번째 정규 리턴에 성공하면 리시버의 득점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2.2. 탁구 경기 형식
탁구 경기 형식은 크게 단식경기와 복식경기로 나뉜다. 단식경기는 개인전이며 복식경기는 팀전이다. 탁구 복식경기는 다시 남녀복식과 혼합복식으로 구분된다.
경기 방식은 11점 1세트이며, 2점씩 서브한다. 10점 이후부터는 1점차 이하일 경우 듀스가 선언된다. 이전부터 '단체전'이라는 종목이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방식이다. 이 방식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기존의 '복식' 단일경기를 대신하여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단체전 경기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1경기와 제2경기는 단식 경기이며, 제3경기는 복식 경기, 제4경기와 제5경기는 다시 단식 경기이다. 이 5경기를 치르면서 먼저 3경기를 이기는 팀이 승리하게 된다.
이러한 단체전 방식은 기존의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