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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프의 역사
1.1. 골프의 기원
골프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형태의 스포츠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로마시대 시이저 황제(BC100~44)때 로마인들이 파가니카라는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바로 골프의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프랑스의 죄 드마이(jeu de mail)나 네덜란드의 콜벤(kolven)이라는 경기가 골프로 발전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파가니카는 경기 규칙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병사들이 야영지에서 휴식 시간에 한 쪽 끝이 구부러진 스틱과 새털로 속을 채운 공을 치며 즐기는 경기였다. 로마인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전 유럽을 정복하고 영국 해협을 건너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점령한 후 4세기까지 머물러 있었는데, 이때 원주민에게 이 경기가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골프의 전신이었다고 한다.
한편 유사한 경기가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지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주장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골프를 탄생시킨 개척자는 바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가 골프의 발상지라고 인정되고 있다.
1.2. 스코틀랜드와 골프
스코틀랜드가 골프의 발상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골프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1350년대의 기록에서 유럽 각지에 골프와 유사한 경기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그 중에서도 스코틀랜드는 골프의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15세기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가 널리 성행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당시 스코틀랜드의 왕들은 골프를 금지하기도 했지만, 결국 왕족들도 열렬한 골프 애호가가 되었다. 특히 제임스 4세 왕은 골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골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처음에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직접 골프를 해보고는 오히려 열성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로써 왕족의 보호아래 골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골프의 전통은 스코틀랜드에 잘 뿌리내렸다. 1744년 최초의 골프클럽인 '신사 골퍼 클럽'이 결성되었고, 1754년에는 세인트 앤드류스에 정식 골프코스가 개장하는 등 골프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골프코스와 클럽이 만들어져 골프가 대중화되어 갔다. 스코틀랜드의 골프 발전이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처럼 스코틀랜드는 골프의 역사와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로또법 고취에도 불구하고 골프를 계속 발전시켰고, 왕실의 후원으로 골프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스코틀랜드는 골프의 발상지이자 진흥지로 자리매김했다.
1.3. 골프의 발전
골프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15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등장한 골프는 차츰 유럽 각국에 전해졌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천여 개에 달하는 골프 코스가 건설되었다. 새로운 골프 코스들이 건설되면서 골프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프로 골퍼들의 활약도 두드러지게 되었다. 또한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골프 장비들이 크게 개선되었다.
최근에는 세계 각지에서 골프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국제적인 규모의 골프대회에 참가한 슈퍼스타의 활약이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극받고 고무되어 골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골프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운동이 되었다. 골프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며, 국민체육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1980년대부터 프로 골프 분야에서 많은 우수한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져 왔다.
2. 한국 골프의 역사
2.1. 한국 골프의 도입
1917년, 조선철도국의 야스카츠 이사는 대련만철본사에 출장 중, 성포 골프코스의 광대하고 쾌적한 플레이 현장을 보고, 경성에도 골프코스를 건설할 것을 구상하게 되었다. 다각도로 연구·검토한 결과, 철도국 직영의 조선호텔 투숙객에 대한 서비스 및 외래객 흡수책의 일환으로 호텔부속 골프코스를 건설할 것을 결정하고, 철도국 관리 하에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다. 이렇게 하여 효창원 골프코스가 탄생하게 되었지만, 당시의 회원들은 골프 규칙이나 에티켓을 알지 못했다. 1922년 6월에 정무총감 아리요시가 부임한 이후 플레이 방식이 개선되었으며, 그는 골프에 관심이 많았으며 영국식 골프에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관민을 통하여 많은 골프 애호가를 배출하게 되었다. 효창원 골프코스가 공원으로 유입됨에 따라 골프코스는 청량리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 철도국과 호텔로부터 골프코스는 완전히 독립하여 건설되었으며, 1924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