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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동기시대 경제생활의 변화상과 군장의 등장이 갖는 사회적 의미
청동기시대에는 주민집단의 모습이 예맥족(濊貊族) 계통이기는 하나, 압록강 중·상류 북안 지역의 주민집단과는 다른 문화적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기원전 3세기에 북안 지역의 주민집단에 의해 강제적으로 원고구려사회(原高句麗社會)에 편입되었다. 또한 남안 지역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북안 지역과의 위치상 비교분석을 통해 이 지역의 물질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
김정배(金貞培)는 서비스(Elman R. Service)가 제시한 band(무리)→ Tribe(부족)→chiefdom(군장)→states(국가)로의 사회발전모델을 수용했다. 이에 따르면 청동기~초기철기시대에는 부족사회에서 군장사회, 국가 단계까지 사회 변화 양상이 발견되고 있으며, 각 시기를 구분할 만한 물질자료의 기준 설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도시, 중앙집권화된 정부, 상비군, 법률, 시장 경제체계, 사회 계층의 위계화 등 국가단계의 요소들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고조선이 최초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는데, 청동기문화를 기반에 둔 예맥조선을 원시 국가단계로 보거나, 기원전 9세기경에 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홍산문화(紅山文化)에서 발전된 하가점하층문화(夏家占下層文化)를 배경으로 기원전 1100년을 전후하여 고조선이 국가를 형성했다는 견해와 다뉴경(多?鏡)을 중심으로 기원전 8세기경 조양의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유형을 고조선의 '國'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국가의 기원을 어느 시점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압록강 중·상류역의 경우는 문명의 중심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지역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이 지역이 예맥조선 혹은 위만조선의 세력권 하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지역이 일괄적으로 같은 사회수준을 영유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지역의 물질문화의 모습을 통해 지역별 사회모습을 유추해야 한다.
청동기의 출현은 곧 신분적 우월성이 뚜렷해지는 위계화된 사회모습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위세품으로서의 청동기의 출현을 통해 가시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