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잊을 수 없는 6.25"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잊을 수 없는 6.25
1.1. 창녕의 6.25전쟁
1.2. 6.25전적지가 나에게 중요한 이유
1.2.1. 역사의식과 기부
1.2.2. 유해발굴
2. 느낀점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잊을 수 없는 6.25
1.1. 창녕의 6.25전쟁
1950년에 북한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였을 때 우리나라는 최전방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대패해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리게 되었다. 창녕지역은 낙동강이 서쪽에 흐르고 있어 북한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돌출부인 창녕∼영산 지역에서 미 제2사단이 북한군 제1군단 예하의 제4사단과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창녕일대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투기간은 1950년 8월 31일부터 9월 17일까지였다. 미 제2사단은 8월 하순 제24사단으로부터 작전지역을 인수받아 제9연대를 영산 정면의 부곡리에서 남지까지, 제23연대를 창녕 정면, 그리고 제38연대를 현풍 정면의 강안고지에 각각 배치하여 진지 편성에 주력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1군단 예하 제2공격집단은 제9사단이 8월 말경부터 제9연대 영산 정면에, 김천에서 재편성을 완료한 적 제2사단이 창녕 정면에, 적 제10사단이 현풍 정면 낙동강 대안에 집결하여, 8월 31일 오후 10시를 기해 최후 공세를 준비하였다. 8월 31일 적 3개 사단의 기습으로 9월 1일 미 제2사단의 작전지역이 돌파당하여 낙동강 동쪽의 오봉리∼주매리·본초리 선에서 저지하였다. 이후 미 제2사단 작전지역은 창녕과 영산의 2개 지구로 양단되었고, 적 제2·9의 2개 사단과 대치한 상태에서 반격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9월 15일 미 제2사단장 케이저는 낙동강 동쪽지역을 먼저 격퇴한 다음, 낙동강의 도하지점에 교두보를 확보하여 다음 작전을 준비하...
참고 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