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사 논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고조선의 역사와 위상
1.1. 고조선사 연구의 의의
1.2. 고조선 위치와 사회 성격 문제
1.3. 고조선의 지배체제와 사회성격
1.4. 고조선의 정치체제와 삼국 사회로의 계기성
2. 한국사 교과서 논쟁의 개요
2.1. 교과서 검정제의 등장 배경과 문제점
2.2. 보수편향 교과서의 문제점
2.3. 정치이념 대립과 교과서 개선방안
3. 고대 역사서술의 변화
3.1.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고조선 연구
3.2. 일본학자와 민족사학의 고조선론
3.3. 해방 후 남북한의 고조선 연구 경향
4. 근 현대사 교과서 서술의 쟁점
4.1. 해방 정국과 국정/검정 교과서 논란
4.2. 80년대 이후 우편향 교과서 비판
4.3.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의 역사관
5. 역사 교과서 편찬 방향
5.1. 교과서 검정 과정의 투명성 제고
5.2.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전문성 강화
5.3. 역사인식의 다양성 존중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고조선의 역사와 위상
1.1. 고조선사 연구의 의의
고조선사 연구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고조선은 한민족의 공동 조상으로 인식되어 왔기에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민족 전체를 묶어줄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역사적 기원을 고조선까지 소급시킴으로써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즉, 고조선사 연구는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고조선사는 민족사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곧 민족의 성격을 규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조선사에 대한 이해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핵심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고조선사 연구는 한민족의 기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된다.
1.2. 고조선 위치와 사회 성격 문제
고조선 위치와 사회 성격 문제는 고조선사 연구에서 가장 큰 쟁점이다"". 이는 학문 외적인 배경과 고조선시대 연구 방법론의 한계에 기인한다"".
첫째, 역사학자들은 탈식민적 심리에서 민족주의적 입장으로 고조선의 중심지와 영역을 한반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고조선의 영역설을 주장했으며, 일본 관학자들은 고조선을 한사군의 식민지로 격하시키려 했다"". 반면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자주성과 웅대함을 강조하며 만주지역까지 영역을 넓히려 했다""
둘째, 고조선시대 문헌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고고학 자료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서 문헌과 고고학의 종합적인 분석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고조선 위치를 잘못 설정하면 그 시대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나오게 되었다"".
북한학계는 유물사관과 항일 민족주의 사학을 결합해 고조선을 북한정권 태동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노예제 사회로 보았다"". 반면 남한에서는 실증사학 전통의 영향으로 평양을 고조선 중심지로 상정했으나, 80년대 이후 북한의 요동 중심설과 대립하면서 이동설이 제기되었다"". 재야학자들은 단군 신화와 야사에 의거해 만주 북부와 한반도 서북부에 걸쳐 있는 거대 제국으로 고조선을 묘사하기도 했다""
결국 고조선 위치와 사회성격 문제는 학문적 접근보다는 민족주의적 편향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크게 좌우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고조선 연구에서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갖추는 것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1.3. 고조선의 지배체제와 사회성격
북한의 연구에 따르면, 고조선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가 통치하는 고대 노예제 국가였다. 60년대에 발굴된 강상무덤에서 여러 명의 순장 흔적이 발견되어, 고조선이 강력한 권력자가 지배하는 고대 국가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93년 단군릉 발굴 이후에는 B.C 30세기 경 순장이 실시되고 평양부근의 토성을 왕성으로 하는 강력한 권력자가 지배하는 단군조선이 존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한 학계에서는 국가 형성 이론에 대한 인식차이와 사료 부족으로 다양한 입장의 가설이 등장했다. 고조선을 고대국가에 선행하는 집단, 혹은 초기국가로 설정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위략에서 B.C 4~3세기에 조선후가 왕을 칭하는 기록을 주목하며, 이를 국력의 성장과 국가단계로의 진입으로 해석한다. 고고학적으로는 세형동검과 초기 철기 보급, 돌무덤-움무덤으로의 변화를 지역 단위 정치체의 성장과 지배자 지위의 진전으로 분석한다. 다만 범금팔조의 해석에서 지배권력과 신분제의 근거를 찾지만, 이를 곧바로 노예제 단계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비판한다.
결국 고조선의 지배체제와 사회성격에 대해서는 북한학계와 남한학계의 인식차이가 큰 상황이다. 북한은 강력한 권력자와 순장 등의 물증을 들어 노예제 국가로 규정하지만, 남한학계는 초기국가 단계의 다양한 정치체제로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고조선의 지배체제와 사회성격은 아직 활발한 논쟁이 진행 중인 주제라고 볼 수 있다.
1.4. 고조선의 정치체제와 삼국 사회로의 계기성
고조선은 초기국가 단계로서 여러 지역집단의 독자성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헌 사료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고조선 사회에서는 지역단위 정치체의 성장과 지배자 지위의 진전이 나타났다. 이는 곧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의 출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위지 동이전에서는 부(部)라는 용어가 확인되지 않아 고조선의 정치체제가 삼국 초기의 부체제와는 다른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 초기에는 독립적 성격의 나(那)가 부(部)로 전환되면서 중앙 권력이 어느 정도 지방에 투사되었던 반면, 고조선에서는 상(相)직을 가진 역계경의 이탈 사례 등 중앙권력의 지방 통제 기반이 발견되지 않아 보다 미숙한 단계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조선의 정치체제에 대한 경험이 후대 삼국의 부체제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위지 동이전에서는 "기자의 후손인 조선후가 주나라가 약해진 것을 보고 자신을 왕이라 칭하고, 동쪽 땅을 다스리려 하자 연나라가 이를 공격하여 주의 왕실을 높이려 했다"는 기록을 통해 고조선의 정치적 변화와 주변국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고조선은 초기국가 단계로서 중앙집권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점차 지역 정치체의 성장과 지배층의 권력 강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삼국 사회로 이어지며, 후대 부체제 형성의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사 교과서 논쟁의 개요
2.1. 교과서 검정제의 등장 배경과 문제점
교과서 검정제의 등장 배경과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시대 변화에 따라 수차례 개혁이 단행되었으며, 교과서 제도 또한 국정제와 검정제를 근간으로 국가의 강력한 개입 하에 유지되어 왔다. 1963년 2차 교육과정을 통해 검정제가 공식화되었으나, 정부가 국정 교과서에 더욱 비중을 두어 민간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교과서의 내용 구성부터 세부사항까지 교육부가 철저하게 통제하였고, 1970년대 유신정권 하에서는 지배 이데올로기 주입을 위한 국정 교과서 체제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국정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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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살리려고 ‘물타기’ 한 교육부」,『한겨례』, 2013. 10. 23.
「[사설] 한국사 교과서 오류 수정이 먼저다」,『중앙일보』, 2013.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