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인류학자의 '연루됨'과 그 의미
1.1. 연루의 개념과 인류학적 접근
'연루(連累)'는 이 책을 가로지르는 핵심 개념으로, 단순히 사건에 휘말리는 소극적 의미가 아닌 이해와 비판 사이의 긴장 속에서 타자와 엮이고 감응하며 공존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는 이 연루의 감각을 통해 보통의 눈으로는 지나치기 쉬운 세계들의 밀도를 읽어낸다.
인류학은 섣부른 비난이나 단정적 해석에 앞서 세계의 복잡성과 사람들의 처지를 사유하고 감응하는 학문이다. 연루의 감각은 이해와 비판 사이의 균형을 잡는데 핵심적이다. 단순한 비판이나 구조적 분석만으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을 "인류학자이자 교육자-학습자, 가족 구성원, 동료 시민, 지구생활자"로 규정한다. 이는 그가 다양한 정체성과 맥락 속에서 세계와 관계 맺는 연루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통해 비판 이전의 이해와 감응의 태도, 즉 연루의 윤리를 실천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조건을 성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천적 태도이다.
1.2. 수사적 고향과 낯섦의 실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수사적 고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신이 편안히 머무르며, 자신의 가치관과 감정이 통하는 익숙한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수사적 고향은 때로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연결을 차단하는 심리적 요새가 되기도 한다. 저자 조문영은 이러한 수사적 고향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낯선 세계로 자신을 던지며 타자와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낯섦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익숙한 판단의 기준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낯섦은 단지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방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낯섦 앞에서 물러설 것이 아니라, 그 낯섦 속으로 들어가 타자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정한 연루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낯섦, 그리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적 타자들과의 마주침을 통해, 수사적 고향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와 대면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타자에 대한 이해를 넘어, 자신의 인식과 감정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익숙한 수사적 고향에 머물면서 타자를 배제하고 차단하는 대신, 낯섦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자의 언어와 맥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연루의 출발점이 된다.
이처럼 수사적 고향을 벗어나 낯선 세계와 대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때로는 강력한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며, 자신의 편안한 세계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낯섦과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이해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감정과 인식까지도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익숙한 수사적 고향에 안주하는 대신, 낯선 세계로 나아가 타자와 더욱 깊이 연루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지만, 진정한 공동체를 상상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여정이라고 강조한다.
1.3. 불편함 속의 공존과 윤리
조문영은 연루를 '타인과 함께 묶여 있으면서 동시에 맞닿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일방적으로 개입하거나 구원하는 위치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 또한 변화하는 실천적 태도이다. 연루의 감각은 단순한 연대나 동정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접속하며 자신 또한 그 접속 속에서 구성되는 감각이다.
저자는 연루의 윤리가 비판이나 시민적 비난이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휘두를 때 오히려 일방적 배제의 기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이해는 비판의 깊이를 더하며, 자신이 위치한 자리의 조건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연루란 타인을 판단하기 전에 왜 그들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들의 반경 안에서 천천히 살펴보는 태도이다.
불편함 속의 공존은 단순한 포용이나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억지스러운 공존의 결과이자 관계의 실천이다. 우리는 타인의 공간을 조금씩 내어주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개인의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타인을 배제하지 않는 태도이다.
연루의 윤리는 세계를 단일한 것이 아닌 복수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한다. 우리는 사회문제를 단순히 '저 사람들의 일'로 취급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나의 감정과 인식까지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자와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2. 취약한 삶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
2.1. 팬데믹 시대 마주한 다양한 삶의 모습
팬데믹 시기 동안 우리는 그동안 체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저자 조문영은 인류학자로서 이러한 삶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가장 먼저, 저자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무관심하게 받아들이는 쪽방촌 주민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이들은 극심한 빈곤과 불안 속에서도 "뭐 이까짓 것"이라며 자신들의 삶에 대한 체념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