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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교회의 경제윤리와 이후의 발전
1.1. 초대교회의 경제윤리
초대교회는 바울의 윤리를 모범으로 삼았다. 바울은 구원을 도덕적 삶의 기초로,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도덕적 삶의 목적으로 삼았으며 이를 이루기 위한 도덕적 삶의 방식을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기독교 윤리는 당시 제국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데, 제국의 뒤편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철학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악이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선한 것의 결핍이었으며, 인간의 도덕적 문제 역시 인간의 의지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결핍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윤리적 삶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때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동화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식대로 행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당시는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국가교회 체제였기에 이러한 그의 생각이 기독교 윤리로써 따로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1.2. 중세 기독교 제국의 윤리와 르네상스 이후의 시대
중세는 기독교의 치세가 가장 컸던 때로, 교리가 곧 윤리가 되는 시대였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이 이성적인 신법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기에 죄란 이성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인 이성을 통해 어느 정도의 윤리적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에게만 주어진 신앙, 소망, 사랑이라는 신학적인 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유럽 사회는 인본주의와 인문주의, 그리고 순수 기독교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계몽주의까지 발흥하면서 신학과 스콜라의 형이상학에 대신해서 이성이나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종교가 아닌 이성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발견해 낸 시기였지만, 칸트 이전의 시기까지는 도그마가 곧 윤리인 시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중세 기독교 제국의 윤리는 신법과 이성에 따른 행동을 강조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신학적 덕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에는 이성과 경험이 중시되면서 도그마와 윤리가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기독교 윤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1.3. 현대성과 자유주의 신학의 발흥
칸트가 등장하면서부터 당대 시대를 이끌던 성서 주석과 교리신학은 이성으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기존에 기독교라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교회라는 틀을 벗어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에 기독교 윤리라는 개념이 대두됨과 함께 이성이 모든 것들의 판단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교리적인 확증과 도덕적인 소유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이냐는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칸트가 등장한 시기 기독교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꽃피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학의 조류를 이끈 이들은 슐라이에르마허와 리츨, 트뢸치, 하르낙과 같은 인물이었다. 이들은 교리와 윤리를 구분했으며, 자율적인 이성의 원칙을 중신하면서 이후의 기독교가 고전적인 기독교 언어 및 교리와 결별하도록 하는데 주된 역할을 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에 기독교라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교회라는 틀을 벗어나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고, 이성이 모든 것들의 판단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교리적인 확증과 도덕적인 소유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발흥하게 되었고, 이를 주도한 주요 인물들은 교리와 윤리를 구분하고 자율적 이성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기독교 언어와 교리에서 벗어나는데 기여하였다.
2.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
2.1. 월터 라우셴부시
월터 라우셴부시는 사회적 위기의 원천을 자연과 인간으로 보았지만, 그가 더 두려워한 것은 자연보다 인간이 만든 위기이다. 그는 인간의 파괴적이고 남을 괴롭히는 행위를 두려워했다. 인간의 역사를 착취의 사회적 단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으로 보면서 당시에 만연했던 사회적 비극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그에 따르면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산업화된 현대적 삶이 사회에 촉발했던 파괴적인 힘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의 대응책은 사회에 정의와 물질적인 평등을 가져오기 위해 사회적인 연대를 창조하고 또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기독교적 사랑의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