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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공지능,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자연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존재로 여겨져 왔으나, 현대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의 등장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와 함께 포스트모던 철학의 영향으로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활발해지면서,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이 학술적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재고찰을 요구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2 연구의 목적과 범위
본 연구는 포스트휴먼 개념의 철학적 토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제시되고 있는 정의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포스트휴먼 담론이 단순한 미래학적 추측이 아닌, 견고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연구 범위는 포스트휴먼 개념의 어원적 분석부터 현대 철학에서의 존재론적 논의까지를 포괄하며, 인문학, 과학기술학, 생명윤리학 등 다학제적 관점에서의 접근을 시도한다.
또한 포스트휴먼 개념이 갖는 다층적 의미를 명확히 구분하여, 학술적 논의에서의 개념적 혼란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포스트휴먼 연구의 이론적 토대를 강화하고, 향후 관련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2. 포스트휴먼의 어원과 개념사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는 용어는 1977년 페레이드 에스판데리(Fereidoun M. Esfandiary)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학술적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초기에는 주로 사이버네틱스와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서 인간의 기술적 확장 가능성을 논의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1999년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의 연구를 통해 페미니스트 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면서, 포스트휴먼 개념은 보다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포스트휴먼 개념은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특히 2013년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출간 이후 인문학 전반에서 핵심적인 이론적 틀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포스트휴먼은 단순한 기술적 진화의 개념을 넘어서, 인간중심주의 비판과 새로운 주체성 모델 제시라는 철학적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다. 현재는 환경철학, 동물윤리학, 디지털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