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평신도를 깨운다
1.1. 교회 부흥의 배경과 문제점
20세기 중반부터 시작하여 그 후 20~30년 동안 한국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복음주의 선교 기관들의 지속적인 복음화운동, 오순절 운동의 거센 열풍이 가져다 준 충격, 그리고 이와 같은 외부적인 도전에 크게 자극을 받은 교회 자체의 영적 각성 등이 한국 교회 부흥의 배경이 되었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인이 교회 성장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한국 교회는 많은 고난을 받아왔고 그 고난이 지금의 열매의 밑거름이 되었기에 결코 우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양적 성장에만 매달렸던 한국교회는 교회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근대화 운동의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 부흥의 결과로 경제적인 문제가 교회 내에 일어나게 되었다. 부흥이나 성장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양적으로 해석하여 왔기 때문이다. 물론 부흥은 양과 질을 다 포함하는 것이지만, 양이 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이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양적 성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허수, 허세, 허상의 후유증이 발생하였다. 허수는 한국 교회가 통계에 정직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허세는 기독교인이 많지만 영향력이 미미한 것을, 허상은 대부분의 평신도가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지 못해 불신자와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부흥이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팽창에 치중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1.2. 삼허 현상
한국교회가 그 동안 통계에 통탄할 정도로 정직하지 못하였다. 교회의 크기만을 앞세우는 시각으로 인하여 목회를 '성공'이라고 하는 좁은 렌즈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는 대형 교회들만이 이상적인 교회로 보도록 하는 모순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므로, 참 교회는 회중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믿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하는 것은 허세에 불과하다. 또한 기독교 신자가 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을 만큼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현재 맛을 잃은 소금이 짓밟히듯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불신자와 구분되지 않는 허상의 현상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믿음은 타락한 피조물이 창조주와 화목하도록 회복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믿는 자들이 이러한 회복의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허수, 허세, 허상의 후유증이 양적 성장에 급급한 교회에게 생겨난 문제점들이다.
1.3. 양적 팽창의 한계
양적 성장에만 매달렸던 한국교회는 교회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는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다. 부흥이나 성장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양적으로 해석하여 왔다. 물론 부흥은 양과 질을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양이 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우리는 이미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양적 성장에만 급급한 나머지 허수, 허세, 허상의 후유증이 생겼다. 허수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통계에 통탄할 정도로 정직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허세는 사회 각 분야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비해 그 영향력이 미미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허상은 한국교회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의 평신도가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지 못해 불신자와 그 차별성을 보이는 데 실패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 각 교단마다 마이너스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사랑했던 성장 주도의 전략이 교회를 쇠퇴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같이 보이는 모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들을 보며 만족하던 영국 교회가 텅 비어있듯이 한국 교회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참된 부흥이 양적 성장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물량주의에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해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경의 원리로 돌아간다면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평신도 재발견
2.1. 평신도 운동의 등장
20세기에 들어와 교회에 새로운 빛을 던진 각성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평신도 운동이다. 평신도가 호응적이고 능동적이며 건설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신학적 원리에 입각한 것이지 단순한 실용주의나 편의주의 때문이 아니다.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찾게 하는 길은 성경 말씀 앞으로 나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평신도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교회는 개혁과 부흥의 시대를 누리었다. 반면에 성직자들이 교회를 독재적으로 관리할 때는 침체와 타락의 시대를 겪었다. 이는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구분이 뚜렷했을 때 나타났던 현상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평신도라는 용어는 성직자와 그 외의 신자들을 구분하는 의미가 전혀 없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며, 성령을 모신 제사장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는 근본적으로 평등한 지체들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평신도가 잠자고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평신도에게 중요한 일에 소외되어 있거나, 제자의 길을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평신도의 모습을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예측 불허의 세기를 교회가 책임지기 위해서는 평신도를 깨우는 일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2.2. 평신도의 역할과 교회의 생명력
존스토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평신도가 호응적이고 능동적이며 건설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바른 이유는 신학적 원리에 입각한 실용주의나 편의주의 때문이 아니라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평신도가 교회에서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찾아 수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와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그들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평신도가 재구실을 하던 교회는 어두운 시대를 밝혀주는 불빛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개혁과 부흥의 시대는 대개 평신도가 재기하는 때였다. 반면에 침체와 타락의 시대는 성직자들이 횡포하는 때였다. 따라서 교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갈라놓는 선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평신도가 호응적이고 능동적이며 건설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본연의 역할과 소명을 발견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경에서는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각자가 기도와 말씀 전파, 중보 등의 특권을 누리며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자들임을 뜻한다. 따라서 평신도의 역할은 단순히 교역자의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교회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 나타난다. 평신도들이 예배와 선교, 봉사 등 교회의 다양한 사역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헌신할 때 교회는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 반면 평신도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교회는 활력을 잃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평신도의 역할과 헌신은 교회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2.3. 평신도의 정의와 본질
평신도는 주님을 모신 선택 받은 자, 성도, 제자, 믿는 자의 공동체인 전 교회를 가리킨다. 따라서 평신도라는 말에는 교역자와 그 나머지 신자들을 갈라놓는 의미가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교회는 항상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전 백성이며 전 교회며, 전 신자의 교제다.
모든 신자는 근본적인 평등의 바탕에서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다. 또한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는 전혀 차이가 없다. 성령으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라는 점에서도 둘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는 것은 모든 신자가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두가 서로 보살피고 사랑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신자들이 지체로서 서로 깊은 의존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