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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트로바토레 오페라 소개
1.1. 일트로바토레의 정의와 역사
'일 트로바토레'는 중세 스페인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음유시인' 또는 '유랑 가객'을 일컫는 말로 이탈리아어이다. 스페인어로는 '엘 트로바토르'라고 한다. 땅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주로 기사 계급의 사람들이 떠돌아 다니면서 시와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이러한 음유시인들의 행적과 삶이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배경이 되었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중 하나이다. 1853년에 초연되었으며, 당시 이탈리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오페라의 주요 배경은 중세 스페인과 프랑스로, 음유시인이자 유랑 가객인 '일 트로바토레'의 고난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일 트로바토레는 자신의 정체를 모른 채 자라났지만, 어머니와 혈육의 인연을 되찾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는다. 이처럼 '일 트로바토레'는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들의 전통과 문화를 반영하고, 가족과 운명에 얽힌 비극적 사건을 다룬 오페라 작품이다.
1.2. 일트로바토레의 극적 내용
<보고서>
일트로바토레는 중세 스페인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음유시인' 또는 '유랑 가객'을 의미한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바로 이러한 트로바토레로, 땅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주로 기사 계급의 사람들이 떠돌아 다니면서 시와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오페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세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이 오페라에서 주인공 만리코는 자신의 어머니가 화형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만리코는 자신을 사랑하는 레오노라를 만나지만, 레오노라의 약혼자 루나 백작과 대립하게 된다. 만리코는 루나 백작과 결투 끝에 사망하고, 레오노라는 만리코의 죽음에 슬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극의 마지막에 만리코의 어머니가 죄책감에 시달리다 고백하면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처럼 일트로바토레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페라의 주제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와 이를 계기로 시작된 비극적 운명을 그리고 있다. 특히 주인공 만리코와 레오노라의 비극적인 사랑이 오페라의 핵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1.3. 일트로바토레 작곡가 베르디의 생애
베르디는 1813년 10월 10일, 북이탈리아의 붓세토 근처의 작은 마을 레론콜레에서 선술집을 하는 아버지 밑에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했으나, 일찍부터 음악적인 재능에 힘입어 8세 때 마을 오르간 교사에게 오르간을 배웠고,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완전히 졸업하여 교사를 놀라게 했다. 그 후 부유한 바레찌 집에 몸을 의지하고 지내며 재능을 키웠고, 20세 때에는 필하모닉 협회의 지휘자 겸 오르간 주자로 출세한 뒤 고향에 돌아왔다. 1836년 23때 보호자 바레치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을 하고, 1839년 밀라노에 나와 스칼라극장의 지배인 메렐리의 후원으로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를 상영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곧 두 아이와 아내를 연달아 잃고 희가극 「왕국의 하루」의 상영마저 실패하여 극도로 우울한 날들을 보낸다. 메렐리와 후에 그와 결혼하게 되는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리 등의 격려로 용기를 얻고 다시 활발한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842년 상영한 오페라 「나부코」는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압박하에 완전한 독립국이라고 할 수 없던 상태였고, 이탈리아의 독립 운동이 극에 달할 때였다.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였고, 이러한 시기에 애국주의를 주입한 나부코들은 이탈리아인들의 기분을 대변하며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 후에도 애국심이 넘치는 많은 작품을 쓰며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오페라들이 베르디의 대표작으로 꼽히지 않는 이유는, 19세기 중엽의 이탈리아인들을 열광시킨 것은 사실이나 베르디가 원숙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1850년 이후이다.
1850년 37세의 베르디가 4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단숨에 작곡해낸 「리골레토」는 이듬해 3월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어 오페라 사상 드문 영광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지금 우리에게도 굉장히 잘 알려져있는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초연 전에 거리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대연습 때에도 가수에게 악보를 주지 않았으며 초연 전날 밤 겨우 악보가 주어졌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리골레토」 이후 베르디는 그의 독특한 선율미와 극적 구성력을 마음껏 구사하여 여러 가지 인간감정, 등장인물을 정확히 묘사하여 여러 가지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1859년 재혼하고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회의원이 되는 등 음악 이외의 일로 나날이 바빠져 작곡을 할 틈이 없었다. 한편, 오페라 이외의 작품도 착수하였는데 그 중에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이탈리아의 애국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죽을음 애도하여 쓴 「레퀴엠」이다. 생애 마지막 시기에 베르디는 시칠리아 지진의 희생자들을 위한 모금을 위한 노래를 출한하고, 밀라노에 은퇴한 음악가들을 위한 안식의 집을 계획, 건축 및 기부하고, 부세토 부근에 병원을 짓는 등 다양한 자선 사업들을 수행하였다. 베르디는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으며, 약 20만 명이 넘는 대군중들이 장례식에 참가해 죽음을 애도했다. 베르디의 장례식은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장례식으로 알려져있다. 거리의 집집마다 그의 죽음을 기리고 위한 검은 천들이 걸려있었고,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900명의 합창단이 부르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두오모 광장과 밀라노의 거리에 울려퍼졌으며, 수천 명의 시민들도 이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며 죽음을 슬퍼하였다.
베르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특징은 청중을 쥐락펴락하는 선율성 강한 음악, 그리고 남성적인 힘이 넘치는 드라마이다. 특히 그가 쓴 아리아들은 성악적 기교와 화려함의 정점을 보여줬으며 흥행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베르디는 누구나 쉽게 음악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의 내면을 울리는 극적 힘을 지녔으며, 발성 구조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작곡했기 때문에 베르디의 곡들은 성악가에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곡들이였다고 한다.
2. 오페라의 종류와 특징
2.1. 오페라 세리아
오페라 세리아는 18세기 이탈리아 오페라로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특히 중시하며 중창이나 합창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다. 소재로는 그리스 신화나 고대 영웅담을 제재로 한 엄숙하고 비극적인 내용이다. 헨델은 40곡 이상의 오페라를 남겨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또한 오페라 세리아에서는 여주인공 역을 맡는 남성 가수로서 카스트라토가 16~19세기에 걸쳐 성행하여 인기가 있었다. 오페라 세리아는 음악적으로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주로 사용하여 성악적 기교와...